이번 LG그룹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의 퇴진이다. ‘최장수 CEO’인 차 부회장은 2005년부터 18년째 LG생활건강을 이끌며 화장품, 생활용품, 음료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중국ㆍ미국 시장을 개척했다. 지난해까지 17년 연속 성장 기록(매출 9배, 영업이익 22배 이상 성장)을 세웠으나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LG생활건강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40% 넘게 하락했다.
후임에는 이정애 신임 사장이 선임됐다. 4대 그룹 중 오너일가를 제외하고 첫 여성 CEO가 된 이 사장은 ‘후’ ‘숨’ ‘오휘’ 등 LG생활건강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쳐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했다. ‘후’는 2016년 단일브랜드로 연 매출 1조 원을 달성했으며 2018년에는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로 연 매출 2조 원을 돌파했다.
차 부회장의 사퇴로 구 회장을 보좌하던 LG그룹 '4인의 부회장단'은 권영수(LG에너지솔루션)‧신학철(LG화학)‧권봉석(LG) 부회장 등 3인 체제로 변경됐다. 재계에선 역대 최대 실적 기록을 경신하는 LG이노텍의 정철동 사장의 부회장 승진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권봉석 부회장은 (주)LG 인사에서 유임됐다. LG 최고운영책임자(COO)인 권 부회장은 ‘LG그룹 2인자’로 불릴 만큼 구 회장의 높은 신임을 받고 있다. LG 관계자는 “전년도 조직개편을 통해 신설한 경영전략부문, 경영지원부문 체제를 유지하고 각 계열사의 미래준비를 지원하는 역할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날 LG화학 임원인사에서 신 부회장도 자리를 지켰다. LG화학은 전기차배터리 소재, 바이오 소재, 재활용 사업 등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LG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 배터리 시장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의 권영수 부회장도 유임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사상 처음 올해 영업이익 1조 원 돌파가 예상된다.
LG그룹 사장단 인사에서도 성과주의 인사 방향이 두드러진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비교적 선방하고 있어 유임됐다. 류재철 H&A사업본부장은 글로벌 생활가전 세계 1위를 달성하는데 기여한 성과를 인정받아 사장으로 승진했다. 전장(VS)사업의 턴어라운드를 주도한 은석현 VS사업본부장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합작법인 추진, 생산공법 혁신 등을 주도해 LG에너지솔루션이 세계적인 배터리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한 성과로 김동명 자동차전지사업부장이 사장에 올랐다. 전날 LG화학 임원인사에서도 다양한 사업의 성공적인 인수ㆍ합병ㆍ분할에 기여한 재경 전문가인 차동석 LG화학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LG이노텍은 카메라모듈 신제품의 성공적인 적기 공급을 주도하고, 생산 공정 자동화 및 제조 지능화 확대로 글로벌 카메라모듈 사업 1등 지위 강화에 기여한 조지태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세계 최초로 센서 시프트 손 떨림 방지 기술을 적용한 카메라모듈 출시, 3D센싱모듈인 ToF(비행시간 거리 측정)모듈의 매출 확대, 액추에이터 등 핵심 요소기술 역량 내재화를 선도한 노승원 상무도 전무로 승진시켰다.
올해 3분기 1조 원이 넘는 누적 적자를 기록한 LG디스플레이에서도 성과를 낸 임원들에 대한 승진 인사가 있었다. 대형 OLED의 프리미엄 TV 시장 내 입지 강화에 기여한 김광진 상무(대형영업ㆍ마케팅 그룹장)와 구매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사 구매 프로세스 선진화를 이끌어온 여성 인재인 박진남 상무(구매 그룹장), 자원 투입 등 경영 관리 프로세스 체계 고도화에 기여한 임승민 상무(경영관리 그룹장)가 각각 전무로 승진했다.
LG그룹은 인사와 함께 진행한 조직개편을 통해 고객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구 회장의 경영 방침을 재확인시켰다. ‘미래준비’와 ‘고객경험 혁신’에 초점을 맞춰 조직개편을 실시한 LG전자가 대표적이다.
LG전자는 본사 직속으로 CX(고객경험)센터를 신설한다. CX센터는 고객경험여정(CEJ) 전반에 이르는 총체적·선행적 고객경험 연구 강화, 전략 및 로드맵 제시, 전사 관점의 고객경험 혁신과 상품ㆍ서비스ㆍ사업모델 기획 등을 총괄하게 된다.
CX센터 산하에 CX전략담당을 둬 전사 관점의 고객경험 지향점 및 핵심과제를 발굴해 추진하며, 디자인경영센터 산하 LSR(Life Soft Research)연구소를 LSR고객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해 CX센터로 이관한다. 디자인경영센터장을 역임한 이철배 부사장이 CX센터장을 맡는다.
플랫폼사업센터는 본사 및 사업본부에 분산돼 있던 LG 씽큐(LG ThinQ)의 기획, 개발, 운영을 통합 운영하는 역할을 맡는다. 플랫폼사업센터는 지난해 7월 신설돼 데이터 기반의 LG전자 팬덤 창출을 주도해 왔다. 센터장은 지난 9월 영입한 정기현 부사장이 그대로 맡는다. 정 부사장은 이베이, 구글 등을 거쳐 메타 한국대표를 역임했다.
구매ㆍSCM경영센터는 생산기술원 산하 생산기획담당 기능을 이관받아 글로벌오퍼레이션센터로 역할 및 명칭을 변경한다. 글로벌오퍼레이션센터는 생산, 구매, SCM 등 오퍼레이션 전반에 걸쳐 역량 및 시너지 강화를 주도하고 DX(디지털전환) 기반의 근원적 체질 개선을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