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죽음의 상인’ 송환에 매달린 이유

▲빅토르 부트가 8일(현지시간) 러시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탑승해 있다. 그는 러시아에 구금된 미국 여자농구 선수 브리트니 그라이너와 교환 형식으로 석방됐다. 타스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러시아에 수감 중인 미국 여자 농구 선수 브리트니 그라이너(32) 석방을 위해 미국에서 복역 중인 러시아 무기상을 내줬다. 사실상 10년 넘게 거물 무기상 빅토르 부트 석방을 추진했던 러시아의 승리라는 평가와 함께 미국은 국가 안보 측면에서 전략적 실수를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8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백악관에서 그라이너 송환을 위해 미국에서 복역 중인 러시아 무기상 빅토르 부트(55)와 교환 방식으로 석방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이날을 위해 오래전부터 노력해왔으며 힘들고 치열한 협상이었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미국 여자 농구선수 브리트니 브라이너(왼쪽)와 러시아 무기상 빅토르 부트. EPA연합뉴스

그라이너는 WNBA 피닉스 머큐리 소속으로 고액 연봉을 받는 농구 스타로 꼽히는 선수다. 그는 미국 오프시즌 동안 러시아 팀에서 활동하다 올해 2월 휴가를 마치고 러시아에 입국하다가 마약 밀반입 혐의로 체포됐다. 러시아 법원은 8월 그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맞교환은 죄질을 고려할 때 수준이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교환 상대로 지목된 부트는 불법 무기 판매 혐의로 2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2012년부터 일리노이주 감옥에서 복역 중인 거물급 무기상이다.

부트는 과거 1990~2000년 초반에 분쟁지역의 반군, 테러리스트, 마약 카르텔 등에게 소형 무기를 공급하며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렸던 인물이다. 그가 이끄는 무기회사가 전 세계의 어떤 곳이든 탱크, 헬리콥터와 각종 무기를 보급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둠의 세계'에서는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 정부가 10년 넘게 부트의 석방을 추진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그가 단순 무기 밀매상이 아니라 러시아 정부랑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옛소련 일부였던 타지키스탄 출신인 부트는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통역 장교로 근무했다. 이후 항공 수송업을 하면서 무기 밀매에 발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그가 러시아 정보 당국에서 근무했으며 그 과정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의 측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가 러시아 정부의 지정학적 목적을 위해 전 세계에 무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는 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부트 교환 석방은 미국 정부가 러시아의 계략에 말려든 것이라고 판단했다. NYT는 러시아가 올해 그라이너를 체포해 조건부 석방에 활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부트 교환 석방이 미국 국가 안보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직 미국 마약단속국(DEA) 출신인 마이클 브라운은 포린폴리시 기고 글에서 거물급 무기상을 감옥에 보내기까지 협조했던 수많은 미국인은 물론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보복 위협에 놓이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가 본국인 러시아에 돌아간 이후 러시아 측의 비밀 무기 밀매가 다시 성행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NYT는 미국이 러시아에 부트 석방이라는 큰 양보에 나섬으로써 푸틴 대통령이 앞으로 인질을 활용해 미국을 궁지로 몰아넣은 후 또 다른 양보를 얻어내는 전략을 쓸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