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보다 몸값을 높이기 위한 ‘약점 잡기’에 치중한다면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엘리엇 외에도 2004년 소버린자산운용(SK)과 허미스인베스트먼트(삼성물산), 2006년 칼 아이칸(KT&G) 등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은 굵직한 기업들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2018년 KCGI(강성부펀드)는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약 17%를 매입해 2대 주주로 올랐고, 조원태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며 토종 행동주의 펀드의 시작을 알렸다. 최근 KCGI는 다음 타깃으로 오스템임플란트를 점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이후 개인 투자자들이 크게 늘면서 행동주의 펀드의 먹잇감도 늘어가고 있다. 2020년 말에는 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가 LG그룹의 계열 분리안에 제동을 걸었다. 화이트박스는 “가족 승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액주주를 희생시키는 계획”이라며 신규 지주회사 설립 등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올해 들어선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다. 안다자산운용은 올해 초 SK케미칼에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 일부 매각을 요구하는 주주 서한을 보냈다. 지난 9월에는 SK디스커버리가 SK케미칼 주식 약 92만 주를 주당 10만8000원에 공개 매수하기로 한 데 대해 “SK케미칼의 적정 주가인 25만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매수 가격을 15만 원으로 올릴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8월 SK㈜의 2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 결정 뒤에는 라이프자산운용의 주주 제안이 있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BYC를 상대로 내부 거래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를 검토하고 있는 태광산업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는 내년 3월 있을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주주 가치 제고’를 대원칙으로 삼은 만큼 소액주주의 우군 역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산시장이 휘청이고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환경 속에서 수익을 적극적으로 높이려는 행동주의 투자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얼라인은 단 1.1%(특수관계인 포함)의 지분으로 에스엠의 변화를 이끌며 주주 행동주의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9년 KB자산운용도 에스엠과 라이크기획의 합병을 요구했지만 에스엠은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해결사를 자처하지만, 기업가치를 훼손한 채 ‘먹튀’해 간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도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악화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10대 행동주의 펀드가 공격한 438개 기업 중 2013~2014년 공격을 시작해 그해 종료한 48개 기업을 대상으로 경영 성과를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고용과 투자, 이익 모두 감소했다.
한경연에 따르면 공격을 받은 48개 기업의 고용 인원은 공격을 받기 직전 연도 대비 4.8% 감소했고, 공격이 끝난 다음 해는 18.1%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경영 개입 이전 증가하던 설비투자는 공격 기간 중 2.4% 감소했고, 공격 1년 후와 2년 후에는 각각 전년 대비 23.8%, 21.2% 줄어들었다. 기업 이익도 크게 감소했다. 또한 당기순이익은 공격 기간에 46.2%, 그 다음해 83.6% 줄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각각 40.6%, 41.0% 감소했다.
재계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가 단기 차익을 노린 형태라면 경영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고, 소송 등 극단적인 공격까지 갈 수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경쟁력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