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경기가 펼쳐진다. 15일 오전 4시(한국시간) 카타르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프랑스와 모로코의 준결승전이다. 아랍·아프리카 국가로서 92년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준결승전까지 진출한 모로코와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의 맞대결이란 점에서 주목되지만, 사실은 식민 지배국과 피지배국이라는 애증의 역사를 지닌 두 나라의 경기여서 긴장감이 팽팽하다.
1970년 멕시코 대회를 시작으로 통산 6번째로 월드컵에 출전한 모로코는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이변의 역사를 써 내려왔다. 조별리그에서 벨기에를 꺾고, 16강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을 눌렀다. 이어 포르투갈까지 유럽 강호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며 아랍·아프리카 축구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프랑스와의 준결승전에서 이기면 우승컵도 넘볼 수 있게 된다.
모로코가 이길 때마다 수도 라바트를 비롯한 모로코 전역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특히 벨기에와 스페인을 이겼을 때는 현지 이주한 모로코인들이 거리로 나와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준결승전을 앞두고 프랑스 경찰은 유사시에 대비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로코는 1912~1956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했는데, 이후 많은 모로코인이 프랑스로 이주하며 양국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며 독특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는 모로코인은 75만 명으로, 프랑스 전체 이민자의 20%를 점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의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구성을 보면 26명 중 모로코에서 태어난 선수는 12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14명은 프랑스·스페인·네덜란드 등에서 태어난 이민자 자녀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 ‘유러피언 드림’을 꿈꾸며 이주한 모로코인의 후손이다. 역사적 응어리와 부모들의 헌신에 보답하려는 선수들의 투지가 모로코를 4강까지 끌어올린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모로코의 선전은 중동·아프리카 국가들의 결집을 부르고 있다. 모로코가 준결승에 진출하자 세계 각지에서 수천 명의 축구팬들이 카타르 도하로 몰려들고 있다. 이들의 첫 번째 쇼핑 목록은 모로코 국대 유니폼과 모로코 국기다. 응원용이다. 도하 시장 상인들은 몰려드는 팬들이 반갑지만, 팔 물건이 없어 울상이다.
아나스 엘 카림이라는 모로코인은 모로코가 포르투갈을 이기자 바로 독일 베를린에서 도하로 날아왔다. 그러나 시장에서 모로코 유니폼을 사려했으나 품절됐다는 말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모로코를 응원하는 이는 모로코인뿐만이 아니다. 인도에서 왔다는 유서프 아흐메드는 “모로코가 유럽 강호들을 꺾기 전까지는 모로코 팬이 아니었다.”며 “며칠 전부터 모로코 유니폼을 찾고 있는데 품절이라 이제 국기를 찾고 있다.”고 했다.
알자지라는 “카타르 전역에서 팔레스타인 국기 다음으로 모로코 국기 인기가 높다.”며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에서 온 사람들도 모로코 국기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모로코 국기를 구입하지 못한 이들은 시장에서 붉은 천을 사다가 초록 별을 그려 넣는 등 수제 국기까지 동원하고 있다고 했다. 모로코 유니폼은 벌당 30리얄(약 8달러)이었는데, 찾는 이가 많아지면서 현재는 벌당 50리얄(약 15달러)로 약 2배 뛰었다고 한다. 카타르 시장 상인들은 월드컵 특수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프랑스 측은 긴장감이 역력하다. 빨강 바탕에 초록 별이 그려진 모로코 국기가 도하를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는 가운데, 경기장에서는 그 유명한 ‘바이킹 천둥 박수’로 기가 눌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모로코 응원단은 매 경기마다 ‘천둥 박수’로 경기장 상대팀을 압도한다. 양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기합을 내지르며 박수를 치는데, 박수 간격이 점차 짧아지면 심박 수도 올라간다. 이는 상대팀에 소름 끼칠 정도의 두려움을 안긴다.
모로코의 이번 월드컵 여정이 어떻게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축구를 통해 역사적 응어리와 한풀이는 이미 달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시선이 프랑스와 모로코의 결전에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