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의 미-중 신냉전, 대결과 공존 사이] ⑫ 페트로 달러 패권과 위안화 국제화의 약진

입력 2022-12-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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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지배력 약화…러·중동 손잡고 위안화 세불리기

시진핑 중국 주석의 12월 7~10일 사우디아라비아 국빈방문은 미국에 충격과 부담을 주기에 충분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난 7월 사우디 방문은 큰 성과 없이 끝난 반면 시 주석의 방문은 정치·외교·경제적으로 많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과 사우디 간 포괄적동반자협정 체결과 함께 시 주석은 제1회 중국·아랍 정상회의와 중국·걸프협력회의(GCC)에 참석함으로써 미국과 아랍권 국가 간 소원해진 틈을 비집고 우군 확보에 힘을 얻는 모양새다. 특히, 경제적으로 약 39조 원(1100억 리얄)에 달하는 에너지와 정보통신, 건설 등 일대일로와 연관된 34개 분야에서 사우디와 협정을 체결하며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일대일로와 사우디 국책 사업인 ‘비전 2030(초대형 건설 프로젝트인 네옴시티)’을 연계해 상호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안도 집중 논의되면서 5G, 신재생에너지, 디지털경제 등 미래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향후 에너지안보 구축과 위안화 국제화에도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제재의 중심에 서 있는 화웨이도 사우디 국책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사우디가 미·중 패권의 핵심 균형자로서 향후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를 잡아라” 미·중 러브콜

사우디의 친중정책 배경에는 첫째 석유패권이 중동에서 미국으로 이동했고, 둘째 미국의 중동지역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축소되고 있고, 셋째 중국과 사우디 간 경제협력 확대라는 정치경제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맹주인 사우디와 석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중국이 미국과 충돌하며 새로운 지정학적 강자로 부상하면서 미국 의존의 외교에서 실리외교로 전환을 꾀하는 사우디의 정치적 의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2013년부터 세계 최대 석유수입국으로, 사우디 석유의 25% 이상을 구매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보다 많은 것이다. 또한 중국의 사우디에 대한 직접투자도 2021년 누적기준 435억 달러로 더욱 늘고 있는 추세다. 이번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 목적은 명확해 보인다. 중국은 사우디와의 정치경제적 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의 페트로 달러 체제에 대한 도전을 본격화하겠다는 속내다. 페트로 달러 체제는 석유는 반드시 달러로 사야 한다는 원칙으로, 현재 세계 원유의 80%가 달러로 결제되면서 미국은 막강한 달러파워를 이용해 세계금융 및 자본패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은 미국의 달러 무기화에 대응해 일대일로 사업을 통한 위안화 무역결제 확대 및 디지털 위안화의 선제적 보급 등 위안화의 국제화 범위를 늘려가고 있다. 최근에는 브릭스(BRICS) 등 경제동맹체 외연 확장을 통해 페트로 위안화를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 6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기존 5개국에 이란과 아르헨티나 등 13개국을 추가로 참여시켰고, 중동 최대의 산유국인 사우디까지 브릭스로 묶으려는 속셈이다. 브릭스 회원국 간 위안화 결제시스템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우디가 만약 브릭스에 참여하게 되면 페트로 달러 패권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지난 7월 바이든 대통령이 부랴부랴 사우디를 방문한 것도 이를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다. 따라서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은 향후 미·중 전략경쟁의 새로운 변화와 위안화의 약진을 의미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8일 수도 리야드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 왕세자의 환영을 받고 있다. 리야드/AP연합뉴스

러, 중과 석유·천연가스 위안화 결제

무엇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은 위안화 국제화의 약진에 큰 발판이 되었다.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 거래를 루블화로 결제하겠다고 러시아가 선포하면서 페트로 달러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반대로 위안화는 더 힘을 얻고 있다. 기타 고피나트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달러의 지배력이 점차 약화되고 국제통화시스템이 더욱 파편화될 것이다”고 언급한 것처럼 달러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국가의 대러시아 금융제재가 역설적으로 중국에는 기회로 작용하며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을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을 통한 단일통화 도입 프로젝트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사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부터 미국과 유럽의 금융제재에 대비해 달러와 유로화 비중을 낮추고 위안화 비중을 높여 오고 있었다. 2021년 기준 러시아 외환보유액 중 위안화 비중이 13.1%로, 달러(16.4%)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한발 더 나아가 러시아는 중국과의 석유와 천연가스 거래를 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으로 하겠다고 발표했고, 반중 진영에 있는 인도도 서방의 제재로 인해 갈 곳 잃은 러시아 석유를 나오는 대로 사들이면서 위안화로 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란도 미국의 제재로 인해 서방 수출길이 막히자 중국과 위안화로 원유를 거래하는 등 페트로 위안화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형국이다.

중, 주변화-지역화-국제화 단계 목표

실제 지난 20년간 여러 통화가 등장하면서 국제 외환준비금 내 달러화 표시 자산 비중이 70%에서 60%로 줄어들었다. IMF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외환보유액 중 달러화의 비중이 1999년 71%에서 2021년 59%로 12%포인트 하락했다. 그리고 달러의 빈 공간 4분의 1을 중국 위안화가 가져갔다. 비록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위안화의 비중은 3% 정도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러시아 제재에 따른 반사이익과 중동 산유국 간 협력 강화를 통해 위안화 국제화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미 위안화의 주변화-지역화-국제화라는 단계별 목표를 세우고 주변국과 일대일로 연선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오고 있다. 싱가포르, 타이완 등 대중화권을 중심으로 하는 1단계 위안화 주변화 단계를 넘어 일대일로 연선국가들과의 위안화 결제 확대를 통해 2단계 위안화 지역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2009년 위안화 무역 결제를 중심으로 위안화 국제화의 시동을 걸었지만, 아직 국제결제통화로서 위안화의 영향력은 미흡하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2022년 1월 기준 국제결제에서 달러 비중이 39.9%, 유로화 36.6%, 파운드 6.3%, 위안화는 3.2%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1위의 수출대국과 세계 2위의 수입대국으로서 중국이 경상거래부터 디지털 위안화 결제비율을 높이면 위안화의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2015년 10월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해 독자적인 국제결제시스템인 ‘위안화 국제은행 간 결제시스템(CIPS: Cross-Border Inter-Bank Payments System)’을 출범시키며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2015년 출범 당시 참여 기관은 11개의 중국은행과 도이체방크, HSBC, BNP파리바 등 8개의 외국은행뿐이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2021년 기준 참여 기관은 103개 국가의 약 1280곳으로 늘어났고, 이 중 75곳은 직접 참여 기관, 나머지 1205곳은 간접 참여 기관이다. 2021년 기준 CIPS 거래는 약 280여 건, 거래금액은 약 65조 위안(약 1경2200조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59%, 65% 이상 증가하며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CIPS가 아직 200여 국가 및 지역의 1만1000개가 넘는 금융기관이 참여하고 있는 SWIFT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점차 미국이 통제하는 글로벌 결제시스템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두 개 이상의 기축통화 보유할 수도”

그러나 위안화가 글로벌 기축통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거래 규모뿐만 아니라 국제적 신뢰성과 안정성, 금융 및 자본의 대외개방 정도, 지정학적 요인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달러의 위기가 지속되고, 4차 산업혁명 기술에 의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가 가속화될수록 위안화의 국제화는 빨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긴 시간의 여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페트로 위안화의 영향력 확대 및 디지털 위안화를 기반으로 한 위안화 국제화의 대장정을 시작한 듯하다. 디지털 화폐를 통해 달러 의존도를 줄이면 달러패권을 이용한 중국 제재를 방어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촘촘한 반중 연대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 중심의 ‘탈달러’ 세력권 형성에 적극 대응할 것이다. 그만큼 페트로 달러 패권에 위안화의 도전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두 개 이상의 기축통화를 보유할 수도 있다”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말이 가지는 무게를 느낄 수 있다. 달러패권을 지키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대응과 대중 견제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따라서 향후 글로벌 통화 및 자본패권을 두고 펼쳐질 미·중 간 신경전이 우리에게는 위협이자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미·중 간 자본패권의 전략적 균형자로서 우리 국익을 위한 전략적 접근 및 실용외교를 깊게 고민해야 한다. 특히 빅뱅 차이나로 변모되는 중국 자본시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 방문학자와 함께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현재 미주리 주립대학에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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