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당국은 10시 3분께 화재 진압을 위한 수조를 설치하고 1시간 20분 동안 물 22톤을 동원해야 했죠. 피해 차주는 2650만 원어치 손실을 떠안게 됐습니다.
전기차 보급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조사에 따르면 2014년 2775대(전체자동차 대비 0.014%)에 불과했던 전기차는 2021년 23만1443대(0.93%)로 늘었습니다. 7년 만에 약 66배 증가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소방 대책은 전기차 등록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반 자동차와는 다른 방식으로 화재가 발생해 전기차 화재 진압을 위한 특수 장비가 필요한 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됩니다.
자동차 보닛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천천히 불길이 이는 내연기관차 화재와 달리, 갑작스럽고 끈질긴 불길이 전기차 화재의 특징입니다.
전기차 화재는 대개 배터리가 충전 중이거나 외부 충격을 받았을 때 발생합니다. 배터리 자체에 결함이 있거나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질 때 일어나는 ‘쇼트’가 화재로 이어집니다.
배터리 내부 결함이 있으면 주로 충전 과정에서 불이 납니다.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시키면 배터리 내부 압력이 높아지는데요. 이때 배터리 일부에 과부하가 걸리며 쇼트가 발생합니다. 교통사고 등으로 외부에서 강한 물리적 충격이 가해질 때도 쇼트가 발생합니다.
쇼트는 순식간에 폭발적인 고온으로 치닫는 ‘열 폭주’를 야기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연성 가스와 산소가 발생합니다. 이들은 불의 연료 역할을 해 불길을 키웁니다.
이렇게 발생한 불은 쉽게 꺼지지 않습니다. 배터리팩 하나는 수백 개의 ‘셀(cell)’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의 셀에서 시작된 열 폭주가 순식간에 이웃 셀로 옮겨붙으며 또 다른 열 폭주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불이 꺼진 듯 보여도 다른 셀에서 불씨가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실제로 화재 진화 후 폐차장까지 보낸 전기차가 재발화하기도 합니다.
다만 전기차 사고 자체의 사고율이 높지는 않습니다. 6월 금융감독원이 자동차보험 가입 자동차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기차 사고율은 18.1%로 비(非)전기차에 비해 2.1%p 높은 수준입니다. 금감원은 연비가 유리한 전기차 특성상 주행거리가 비전기차보다 길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데요. 이를 고려하면 전기차와 비전기차 사이 유의미한 사고율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내연기관차와 다른 전기차의 독특한 화재 발생 메커니즘이 전기차 화재 사고를 두드러져 보이게 만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기차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는 전용 특수 장비가 필요합니다.
이동식 침수조를 동원한 제주 전기차 화재 진압에는 1시간 20분 동안 22톤의 물이 필요했습니다. 22톤은 소방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중형 펌프차 기준 소방차 7대에 상당하는 분량입니다. 일반적 내연기관차는 화재 진압에 30분간 2~4톤의 물이 필요하다는 걸 생각하면 전기차 화재 진압이 훨씬 까다로움을 알 수 있습니다.
제주 사례는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미국 스탬퍼드 시에서는 9월 16일 발생한 테슬라 전기차 화재 때 40분간 88.8톤의 물을 써야 했습니다. 미국 매체 더힐의 2021년 8월 조사에 따르면 소방관이 전기차 화재를 진화하기 위해서는 표준 휘발유차 화재 진압보다 40배 이상의 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일반 내연기관차 불을 끄듯 전기차 화재를 진압하면 3~4시간이 소요됩니다.
화재 진압이 오래 걸리는 데는 전기차 배터리 구조가 한몫합니다. 전기차 배터리는 대개 티타늄 외피에 싸여 자동차 하부에 있습니다.
티타늄판은 배터리가 외부와 충돌하는 걸 막기 위한 보호 장치입니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하면 물을 뿌리지 못하게 막는 방해물로 전락하죠. 화재 진압을 위해선 배터리에 물을 직접 뿌려야 해 베테랑 소방관조차 애를 먹습니다. 배터리에서 발생하는 가스가 연료가 되어주기에 산소를 차단해 불을 끄는 기존의 소방 방식도 안 먹히곤 합니다.
이에 현재는 △물을 이용한 냉각소화(물로 온도를 낮춰 점화에너지를 제거) △질식소화덮개(차량 위로 방사포를 덮어 산소차단) △포소화약제(거품을 발생시켜 소화) △이동식 침수조(수조에 배터리 침수)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기차 화재를 진압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기차 화재 대처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동식 침수조입니다. 이동식 침수조는 전기차 주변에 물막이판을 설치해 배터리 높이까지 물을 채워 화재를 진압하는 소화 장비입니다. 무게가 가벼워 설치와 활용이 상대적으로 간편합니다. 전문가들은 불이 붙은 배터리가 외부 산소와 결합해 계속 타는 걸 막기 위해서는 물에 계속 잠기게 하는 것이라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동식 침수조는 사용 가능한 상황이 제한적입니다. 이동식 침수조는 화재 진압 이후 안정화 단계에서 효과적입니다. 차를 평지인 공터로 이동시킨 뒤 설치해야 하죠. 불이 너무 세거나 차 안에 사람이 타고 있어도 침수조 활용이 어렵습니다.
7일 경북 영주시에서는 전기차 택시가 건물과 충돌하는 사고로 운전자가 사망했습니다. 소방차가 사고 신고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음에도 불이 전혀 꺼지지 않았는데요. 불은 2시간이 지나서 진압됐습니다. 당시 차량이 사람이 타고 있어 질식소화덮개를 사용하지 못했고, 이동식 침수조는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동식 침수조가 있었더라도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 의견입니다. 당시 경북도소방본부 대응예방과 관계자는 “화염이 너무 세 견인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소방관계자는 전기차 진화 대책 자체에는 아직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전합니다. 김용헌 국립소방연구원은 소방방재신문을 통해 “배터리를 효과적으로 냉각시키는 방법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