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對中 수출 부진 해소 미지수...소비진작 대책 빈약
대출규제 완화로 가계부채 확대 우려...재정 통한 경기부양 없을 듯
정부가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위기극복과 경제 재도약에 중점을 둔 것은 내년 우리 경제가 1%대 성장에 머물고 고물가가 지속되는 등 내년 경제 상황이 안 좋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엄중한 인식하에 내놓은 정부의 위기 극복 대응책은 전반적으로 기존에 수립된 대책을 재탕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정부가 긴축재정 모드로 나면서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는 21일 ‘2023년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통해 내년 우리나라 실질 경제성장률이 1.6%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2.5%)보다 크게 하락한 것이며 이에 앞서 한국은행(1.7%)과 한국개발연구원(KDI·1.8%)가 내놓은 전망치보다 낮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글로벌 교역 및 반도체 업황 위축 등으로 올해보다 4.5% 줄 것으로 예측했다. 내수 경기를 지탱하는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는 대외 여건 악화, 고금리 지속, 부동산 경기 위축 등으로 각각 2.8%, 0.4% 줄 것으로 봤다.
민간소비는 고금리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 고용 둔화 등으로 성장세가 올해 4.6%에서 2.5%로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올해 5.1%에서 내년 3.5%로 둔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3.5%는 물가안정목표인 2%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며 한국전력의 적자 해소를 위한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이 내년 본격화하면 물가는 더 뛸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2026년까지 한전 적자 해소를 목표로 전기요금 인상을 점진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고용의 경우 취업자 증가폭이 올해 81만 명에서 내년 10만 명으로 뚝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정부가 내년 우리 경제가 어렵다고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출 활성화, 물가 안정, 고용 안정화 등의 다양한 대응책을 쏟아 냈지만 대체적으로 기존에 수립한 대책을 재강조하거나 지원을 확대·연장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별히 눈에 띄는 대책이 안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경기 회복의 최대 관건인 수출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반도체 등 주력산업과 해외건설, 관광·콘텐츠 등 5대 분야 수출 경쟁력 제고 방안 마련과 연 500억 달러 해외 인프라 수주, 방산수출 4대강국 전략 수립 등은 올해 하반기 중 열린 대통령 주재 수출전략회의, 비상경제장관회의 등에서 제시된 내용이다. 이들 방안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필요하지만 당장의 수출 감소 주원인인 반도체 및 대(對) 중국 수출 부진을 해소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물가 안정을 위한 대책은 기존 지원을 연장하는데 중점을 뒀다. 대표적인 경유·LPG 유류세 최고 37% 인하 및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지급연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휘발유 유류세 인하폭은 내달부터 37%에서 25%로 내려가 가솔린 차량 이용자의 비용 부담은 늘게 됐다. 정부가 고용 안정 위해 일경험 확대, 맞춤형 고용서비스 강화 등으로 청년 취업을 지원한다는 방침이지만 내년 기업의 어려운 경영 사정을 고려할 때 실제 고용 연계로 이어질 지도 의문이다. 또 노인·취약계층을 위해 정부 일자리를 조기 시행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지원 규모는 제시되지 않았다.
경기 회복에 필요한 소비진작 대책으로는 대체공휴일 지정 확대 추진 외엔 눈에 띄지 않는다. 고금리 지속으로 폭증하고 있는 가계부채 확대도 우려된다. 정부가 규제지역 다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금지 해제 등 대출규제 완화 조치들을 잇달아 내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내년부터 긴축 재정에 나서는 정부가 추가적으로 재정을 투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움에 따라 정부의 재정 역할을 통한 경기 부양은 어려울 전망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물가 상승 부담 등을 고려할 때 정부로서는 소비 진작을 위한 재정 확대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정부의 지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리는 재정건전화 강화 속에 법인세 등을 깎는 감세 추진은 앞뒤가 안 맞는 얘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