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비디오 대여점으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영화 시장의 지형을 바꿔 놓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사람은 지난해 4분기 기준 2억 2000만 명을 넘었습니다. 2016년 1월 한국에 진출해서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최강자로 떠오르기도 했죠.
이렇게 넷플릭스가 성장한 배경에는 저렴한 가격도 한몫했습니다.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볼 돈으로 한 달 동안 원하는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계산이 소비자들을 움직였던 건데요. 한 달 요금이 1만7000원인 ‘프리미엄 요금제’를 4명이 함께 사용할 경우, 커피 한 잔 가격에 영화·드라마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렇게 ‘커피 한 잔’ 가격에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건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외신은 내년 초 넷플릭스가 계정 공유 이용자를 대상으로 유료화에 나설 것으로 관측합니다.
넷플릭스는 최근 한 계정을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공유하는 방식을 금지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10월 18일(현지시간) 3분기 실적 발표 관련 주주 서한에서 “계정 공유 수익화를 위해 (가입자를) 배려하는 접근 방법을 마련했다”고 밝혔죠. 그러면서 해당 방안을 고객 피드백을 거쳐 2023년 초부터 시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1억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계정 이용 구독자가 대상입니다.
사실 원칙상 이러한 공유는 지금도 금지돼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한집에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 계정을 공유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 중입니다. 이용약관에는 “가구 구성원이 아닌 개인과 공유해서는 안 된다”는 표현이 명시되어 있죠.
하지만 이러한 방법이 구독자를 모으는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판단 아래, 넷플릭스는 암묵적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도 계정을 공유하는 걸 용인해왔습니다. 리드 해스팅스 넷플릭스 창립자이자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2016년 “우리는 소파에 2명이 앉아 있든 10명이 앉아 있든 상관없이 넷플릭스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2017년에는 공식 SNS에 “사랑은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것”이라며 계정 공유에 대해 긍정을 표하기도 했죠.
지난달 4일 광고형 요금제를 도입한 데 이은 유료화 정책은 11년 만에 처음으로 가입자 수가 감소한 데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분기 넷플릭스 유료 가입자 수는 직전 분기 대비 20만 명 감소했고, 2분기에는 97만 명 감소했습니다.
소비자 반응은 미온적입니다. 많은 구독자가 계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난해 넷플릭스가 자체 조사한 결과 전체 사용자의 33%가 계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계정을 공유하는 가장 큰 이유는 넷플릭스를 저렴하게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달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족 이외 제삼자를 통해 유료 OTT를 구독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 부담되기 때문(47.2%)’으로 나타났습니다. ‘비용을 주고 가입하기에는 사용시간이 얼마 안 돼서’라고 응답한 비중도 35%에 달했죠. 결국 경제적인 이유로 계정을 공유하는 사람이 82.2%에 달하는 셈입니다.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면 서비스 이용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사람은 42.5%에 달합니다. KISDI는 해지 이유를 ①서비스에 가입할 때부터 계정 공유를 목적으로 했고, ②추가 요금제를 이용할 경우 경제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으로 분석했습니다.
시중에는 이미 공유할 지인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을 위해 OTT 계정 공유가 가능하도록 매칭시켜주는 플랫폼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런 플랫폼을 통해 넷플릭스를 구독한 소비자들이 과연 추가 요금 서비스를 이용할 것인지에는 의문이 듭니다.
넷플릭스는 공유 유료화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습니다. 10월 25일에는 프로필 이전 기능이 도입됐습니다. ‘프로필 이전’은 계정을 공유하던 사람이 새 계정을 만들 때 시청 기록, 찜한 콘텐츠, 언어 및 자막 설정 등 개인 기록을 그대로 옮겨주는 기능입니다. 앞서 3월부터는 칠레, 페루, 코스타리카 등 남미 3개국에서 계정 공유에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시험 시행하고 있죠.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유 유료화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확실하지 않다고 조언합니다. 미국 금융 기업 모닝스타의 선임 애널리스트 닐 매커는 “공유 계정 유료화에 따른 효과는 일회성에 그칠 것”이라며 “넷플릭스는 유료화로 인한 고객 이탈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계정 공유 유료화가 “넷플릭스 구독을 취소하도록 자극할 수도 있다”고 판단합니다. WSJ는 “계정 공유 단속을 위한 기준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예상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가족이 각자 다른 지역에 거주하거나 가입자가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 넷플릭스를 사용하는 등 예외적 상황이 존재할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넷플릭스가 계정 공유 유료화에 성공하면 디즈니플러스, 파라마운트 플러스, HBO맥스 등 경쟁 OTT 업체들도 넷플릭스의 뒤를 따를 가능성이 큽니다.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한 넷플릭스의 시도가 유효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