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유족에 말없이 퇴장
10ㆍ29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위 활동이 지난 21일 가까스로 정상화됐다. 여야 대치에 무산될 뻔한 국조특위가 출범 27일 만에 가까스로 첫발을 뗀 것. 하지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거취와 민주당 신현영 의원의 '닥터카 논란'이 겹치면서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여야 정쟁화를 경계하는 한편, 철저한 진상조사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현장조사 첫날, 유족들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우상호 국조특위 위원장이 잠시 멈춰 서서 “첫 현장조사를 여야가 같이 시작하게 됐으니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주시고, 여야가 힘을 합쳐 진실을 잘 규명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부 유가족은 "살려 달라고 아우성칠 때 왜 아무도 없었나”라며 오열했다.
소방관계자의 당시 현장 상황을 보고받은 특위는 이태원파출소로 자리를 옮겨 참사를 전후한 경찰 대응의 적절성을 따져 물었다. 경찰의 시간대별 조치를 재차 확인했고, 당시 경찰 대응이 잘못됐다는 질책성 발언도 이어졌다.
민주당 특위 간사 김교흥 의원은 “코드 제로가 발생한 뒤 상황팀장까지 보고가 된다고 하는데 제가 듣기로는 그것도 잘 안된 것 같다”라며 “서울청장님이 오후 8시 37분에 퇴근하셨는데 보고를 받았는지, 안 받았으면 왜 안 받았는지 알려달라”고 물었다.
이에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코드 제로가 100여 건, 상황 따라 200건까지 간다”며 “코드 제로가 상황팀장한테 들어간다는 얘기는 시스템적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지 상황팀장이 자체적으로 검색하지 않는 이상 확인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답했다.
그러자 야당 위원들 사이에서 “경찰이 원론적 답변으로 질문을 회피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김 청장은 “저도 한마디만 하겠다. 확인이 안 돼서 안 됐다고 말한 것이지 숨기려는 차원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시청에서 진행된 현장 조사에서는 사고 당시 서울시 내부 상황 공유 및 보고 체계, 초기 대응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시가 올해 11월 버전이라며 특위에 제출한 ‘공연·행사장 현장 조치 행동 매뉴얼’이 실은 박근혜 정부 당시 매뉴얼을 그대로 옮겨 놓은 ‘예전 자료’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우 위원장은 “옛날 자료를 표지만 바꿨다. 의원들이 모두 바보가 됐다”며 “자료 점검도 하지 않고 보내서야 되겠느냐. 오세훈 시장은 시정도 이렇게 하느냐”고 질타했다. 오세훈 시장은 “분향소 한분 한분의 영정사진을 보며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깊은 자책감을 느낀다”며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특위는 지난 23일 정부종합청사와 용산구청을 찾아 현장 조사를 이어갔다. 행안부 현장조사에서 야당은 행안부의 부실 대응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고 국민의힘은 ‘시스템의 문제’라며 이 장관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 의원들은 “158명이 사망했는데 촌각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냐”며 사과를 요구했지만, 이 장관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 장관은 “참사 발생 후 1시간 동안은 보고도 받지 못했고 컨트롤타워로서 2시간 만에 현장에 갔다. 시스템의 문제냐 장관의 문제냐”고 물은 민주당 윤건영 의원의 물음에 “시스템의 문제”라며 선을 긋기도 했다. 또 ‘장관이 곧바로 중대본을 꾸리지 못했다(민주당 김교흥 의원)’는 지적에는 “긴급구조통제 단장인 소방서장이 응급조치하는 것이 중요하지, 중대본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맞섰다.
반면,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은 “컨트롤타워 개념을 정리하자. 최종 컨트롤타워가 대통령인 것은 당연하고 재난안전법상으로는 행안부 장관이 총괄하게 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행안부 장관이 컨트롤타워라는 뜻”이라고 이 장관을 엄호했다. 또 이 장관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여당은 민주당 신현영 의원의 ‘닥터카’ 탑승 논란을 언급하며 역공에 나섰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은 “DMAT(재난의료지원팀) 차에 국회의원이 타고 이삼십 분 (도착을) 연기해서 인명 구조를 못 하게 하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하는 일이 촌각을 외면하는 것이지 관료적으로 본부를 차리는 게 급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형동 의원도 “사고가 났는데 대책본부를 먼저 만들고 사고 현장으로 가야 하냐, 사고 현장에서 빨리 수습하고 구조해야 하냐. 그건 삼척동자도 아는 것”이라고 가세했다.
참사 유족을 대하는 이 장관의 태도도 논란이 됐다. 이 장관은 회의가 끝나고 퇴장하면서 여야 의원들과는 악수와 인사를 나눴지만, 현장에 있던 유족들에게는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유족들은 “여기 사람 있는데 눈길도 안 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장관이 질의에 대답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입만 열면 모른다고 한다. 저런 말 하려고 나온 거냐”며 비판이 쏟아졌다.
한편, 가까스로 가동된 국정조사를 둘러싼 우려도 여전하다. 여야가 일반 증인 채택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서다. 민주당은 참사 초기 부적절한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한덕수 국무총리를, 국민의힘은 ‘닥터카 논란’의 신 의원을 국정조사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맞선다. 다음 달 7일 종료되는 특위 활동 연장에도 여야가 대립하는 상황이다.
이 장관의 거취 문제도 역시 갈등의 불씨다. 이 장관은 ‘참사 책임을 물어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의결된 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적 있냐’는 민주당 천준호 의원 질문에는 “따로 없다”고 답했다. 천 의원이 “주변에서 사의를 표명하라고 요청받은 적 있느냐”고 질문한 데 대해서도 “따로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