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영석 의원 찬성 토론 “경쟁국에 뒤처지지 않아”
국민의힘 특위서 만든 K칩스법 국민의힘이 반대한 꼴
기재부 벽이 높았다는 후문...급조된 찬성 토론
추경호 부총리 재정건전성 꾸준히 강조
단기적 성과로 평가받는 기재부 성과제도 한 몫
“재석 262인 중 찬성 225인, 반대 12인, 기권 25인으로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23일 밤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같이 말했다. 개정안에는 반도체 설비투자에 대한 대기업의 세액공제율을 현행 6%에서 8%로 2%포인트(p)로 올리는 내용이 담겼다. 세계 반도체 전쟁 승리를 위해 대기업 세액공제율을 20%로 높이자던 ‘반도체 특별법(K칩스법)’은 허무하게 막이 내렸다.
눈길을 끌었던 점은 ‘8% 세액공제안’을 두고 벌어진 찬반 토론이다. 국민의힘 반도체특위 위원장으로 K칩스법을 만든 장본인인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정부는 기재위 의결 절차도 없이 반도체산업육성정책 중 가장 중요한 반도체시설공제율을 25%에서 8%로 완전히 후퇴시켰다”며 부결을 호소했다. 양 의원이 대표 발의한 조특법 개정안은 대기업 20%, 중견기업 25%, 중소기업 30% 등으로 공제율을 높이는 방안이었다.
뒤이어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이 ‘8% 세액공제안’에 찬성 토론을 시작했다. 윤 의원은 “일각에서 미국 대만 등 경쟁국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반도체사업에 대한 지원수준이 낮아서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며 반박했다. 윤 의원은 △대만의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 5% △미국의 25% 세액공제율 적용 이유 ‘미국의 특수성’을 이유로 K칩스법을 반대했다.
투표 결과, 국민의힘에서는 기권 10명(김영식·박수영·송석준·유정주·윤상현·윤창현·이병훈·이용우·한기호·홍석준), 반대 1명(조명희)으로 총 11명의 의원이 정부안에 유보하는 입장을 냈다. 국민의힘 반도체 특위 위원에서는 윤주경 의원이 이례적으로 찬성표를 던졌고, 이 밖에 양향자·송석준·김영식·양금희·조명희 의원 등은 사실상 반대했다.
국민의힘 특위에서 만든 K칩스법을 왜 국민의힘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막아섰을까. 기획재정부의 벽이 너무 높았다. 기재부는 세수 감소를 이유로 8% 이상 세액공제를 해줄 수 없다고 반대해왔다. 앞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도 대기업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20%로 늘리는 안이 추진됐지만, 산업부와 기재부 등 부처 간 이견이 발생하면서 국정과제에서 제외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권 의원은 “기재부에서 국민의힘에 찬성 토론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며 “당 지도부에서도 양향자 의원이 혼자 반대 토론을 하면 부결될까 하는 걱정이 있었고, 당시 국민의힘 일부 의원에게 찬성 토론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국회 관계자도 “윤영석 의원의 찬성 토론은 본래 잡혀 있었던 게 아니”라며 “뒤늦게 발언 신청을 해 끼어들었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윤석열 정부 출범 전부터 재정 건전성을 강조해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줄어든 재정을 정상화해야 하는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산자위 소속 한 의원은 “경제적 상황이 안 좋아서 법인세 쪽에서 세수가 굉장히 줄어들 것으로 본다”며 “기재부 입장에서는 전체적으로 줄어드는 부분에 대한 걱정을 안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적 성과에 좌지우지 되는 기재부 성과제의 여파였다는 얘기도 있다. 한 국회 고위관계자는 “기재부는 ‘연간 성과를 예산을 얼마나 깎았느냐’, 그리고 ‘얼마나 세수를 더 걷었느냐’를 두고 평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장 오늘의 곶감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기재부 실·국장들이 처한 환경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의 말뒤집기로 ‘K칩스법’ 통과가 좌초되면서 국민의힘은 한동안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취임 초부터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선언한 윤 대통령이었기에 공약에 의심이 간다는 이유에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약속한 공약마저도 저버리면 앞으로 어떻게 믿고 기업들이 한국에서 반도체사업을 할 수 있겠냐”며 울분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