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에 거래소 공포증이 확산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어느 곳이 내 자산을 지켜줄까를 고민하며 긴 밤을 지새운다. 거래소의 신뢰도를 측정하는 서비스조차 순위가 제각각으로 매겨져 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거래소를 선택해야 할까.
투자자들의 불신 이유는 그동안 대규모 사건·사고가 코인 거래소를 통해 발생한 적이 많아서다.
2014년 2월 세계 최대 거래소였던 일본 마운트곡스가 해킹으로 파산하면서, 거래소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었다. 피해자인 마운트곡스 고객들의 남은 자산은 아직도 회수 절차를 진행 중이다.
2년 뒤인 2016년에도 세계 최정상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파이넥스가 12만여 개의 비트코인(당시 약 710억 원)을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거래소 측은 거래소 수익을 통해 장기간 반환을 약속하며, 손실을 보상했다. 여전히 오래된 투자자들이 거래를 하고 있지만, 최정상의 타이틀은 찾지 못했다.
2017년 코인 광풍 이후 약세장을 이어오던 2019년 5월에는 세계 1위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7000비트코인(당시 475억 원)을 해킹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1·2위 업체인 업비트와 빗썸도 수백억 원대 이상의 해킹 사고를 겪은 바 있다. 빗썸은 2018년 6월 190억 원어치, 2019년 4월 221억 원어치 등 두 차례 외부 유출 사고를 당했고, 업비트는 2019년 11월 34만여 개의 이더리움 등을 합쳐 총 1260억 원을 도난당했다.
지난해 세계 3위였던 FTX는 관계사와의 무리한 투자가 문제가 돼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FTX 사태 이후 거래소들이 저마다 고객 자산이 안전한지 확인하는 차원으로 ‘준비금 증명’이란 것을 도입했다. 그러나 아직도 바이낸스는 완벽하게 지원하지 않는다. 특히 회계법인 마자르는 바이낸스와 쿠코인, 크립토닷컴 등 모든 가상자산 클라이언트 대상 업무(준비금 증명 서비스)를 중단하기도 했다.
가상자산 업계에선 나름대로 거래소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서비스가 있다. 통계사이트 코인게코와 코인마켓캡에선 거래소의 신뢰도, 거래량, 방문자 수 등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이트의 평가 점수가 달라 어떤 곳을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코인마켓캡에서의 종합점수 순위는 △1위 바이낸스(9.9점) △2위 코인베이스(8.0) △3위 크라켄(7.6) △4위 쿠코인(6.5) △5위 비트스탬프(6.4) △6위 비트파이넥스(6.2) △7위 OKX(6.2) △8위 제미니(6.0) △9위 빗썸(6.0) △10위 바이낸스US(6.0) 등이다.
반면 코인게코에선 △1위 코인베이스(10·GDAX) △2위 후오비(10) △3위 OKX(10) △4위 쿠코인(10) △5위 바이빗(10) △6위 크립토닷컴(10) △7위 바이낸스US(10) △8위 비트파이넥스(10) △9위 바이낸스(9) △머신엑스체인지코인(9) 등으로 집계됐다.
신뢰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공신력을 가졌다고 하기엔 둘 사이의 차이가 너무 크다. 코인마켓캡에서 1위를 차지했던 바이낸스는 코인게코에선 8계단이 떨어져 9위에 들었다. 크라켄은 한 곳에서 3위였지만, 다른 곳에선 10위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양쪽 모두 좋은 점수를 받은 곳은 코인베이스로 종합 최상위로 평가된다.
고려해야 할 점은 코인마켓캡은 바이낸스가 인수한 업체라는 점이다. 두 회사와의 관계가 순위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심도 가능하다.
우리나라 거래소인 빗썸은 코인마켓캡에서만 10위에 들었고 코인게코에선 23위로 밀려났다. 업비트는 코인마켓캡에서 21위, 코인게코에선 46위로 이들의 정한 기준에 한참을 못 미쳤다.
다만 바이낸스와 코인마켓캡의 관계 등의 영향, 평가 업체 측이 어떤 이유로 점수를 줬는지 정확히 공개하지 않은 점 등 신뢰성 논란은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비트파이넥스와 바이낸스, 업비트, 빗썸 등은 막대한 규모의 해킹에도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평판 타격에도 사업이 워낙 잘 됐기 때문에, 수익으로 피해금을 충당할 수 있었다. 심지어 바이낸스의 경우 단 몇 달 만에 해킹 피해액을 모두 갚은 것으로 알려졌다. 빗썸과 업비트도 수익 중 일부만을 쓰고도 피해액을 다 보전했다.
이런 전례로 시장에선 상위권 거래소라면 해킹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고객 자산을 갚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FTX 파산 사태로 상위권 거래소도 믿을 수 없게 됐다. FTX는 파산 직전 파생상품과 현물거래 등을 종합했을 때 세계 3위로 추정된다.
FTX 사태를 보더라도 거래소 대표가 마음먹고 자금을 쓰면서 손실을 보게 되면 회생의 방법이 전혀 없다. 이 정도 규모의 거래소가 고객들의 뱅크런(대량 자금 인출)으로 지급 불능을 선언한 것은 마운트곡스 사건 이후 처음이다.
업계의 불신으로 개인 지갑에 코인을 보관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FTX 사태로 떠들썩하던 지난해 11월 중순 하드웨어 지갑 제조사 트레저의 일주일 매출은 직전 주보다 3배 늘었다고 한다. 이때 판매량은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고치(6만8000달러)를 기록한 1년 전보다도 높았다. 그만큼 거래소들을 믿지 못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