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지도 상승 노림수
사명에서 본업을 제외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1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회사 사명에서 본업을 의미하는 단어를 빼고 새로운 이미지를 구가하려는 기업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
먼저, HD현대는 최근 현대중공업그룹에서 사명을 공식 변경하고 신사업 강화에 나섰다. 1972년 그룹 모태가 된 현대중공업 설립 후 지난 반세기 동안 그룹 전체를 상징하던 ‘중공업’이란 명칭은 조선 부문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에 남는다. 중공업의 이미지를 벗어나 미래 신성장 사업을 육성, 발굴하는 투자 전문 지주사로서 역할을 선명히 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다. 새로운 사명인 HD현대는 ‘인간이 가진 역동적인 에너지(Human Dynamics)’로 ‘인류의 꿈(Human Dreams)’을 실현한다는 뜻이다.
SKC의 반도체 소재 사업 투자사 SKC솔믹스가 ‘SK엔펄스(SK enpulse)’로 사명을 변경한다고 이날 밝혔다. 회사는 ‘글로벌 반도체 ESG솔루션 기업’으로 새로운 도약을 꾀한다. 올해부터 공식 변경된 SKC솔믹스의 새 사명인 SK엔펄스는 ‘가능하게 하다’는 의미의 영어 접두사 엔(en)과 흐름, 파동을 뜻하는 펄스(pulse)를 결합해 만들어졌다. SK엔펄스는 30년 이상 축적된 연구개발을 통해 반도체 분야의 파인 세라믹 소재 산업 국산화를 주도해 왔다. 옛 사명인 솔믹스에는 주 사업인 세라믹의 의미가 담겼었다. 이번 사명 변경으로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기업, 반도체 소재 산업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겠다는 게 SK 측 설명이다.
SK그룹은 지난 2020년 초부터 일부 계열사의 사명 변경을 추진해왔다. 기업명에 ‘에너지’, ‘화학’ 등이 들어가면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기 어렵다는 최태원 회장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이에 지난해 SK종합화학이 SK지오센트릭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지난해 11월 SK루브리컨츠도 새 이름인 SK 엔무브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최 회장은 에너지 사업도 기술 중심으로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신사업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의미로 2011년 사명을 지금의 SK이노베이션으로 변경했었다. 최 회장이 강조하는 경영철학은 ‘딥 체인지(근본적인 변화)’와도 궤를 같이한다.
사명 변경을 검토하는 소비재 기업들도 있다. 매일유업은 하반기 중 사명에서 ‘유업’을 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매일유업의 사명 변경 검토는 유업체 이미지를 지우고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것이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사업영역을 확장해야 하고, 글로벌 사업도 고려해 사명 변경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식품기업 중에선 CJ제일제당도 사명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 사명에서 ‘제당’을 빼고 리브랜딩하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이처럼 사명에서 본업을 빼는 기업이 늘어난 데에는 사명 자체를 브랜드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이 꼽힌다. 또, 사명을 간소화하는가 하면, 영문을 포함시켜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려는 승부수로도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