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저의 의뢰인(기업 총수)이 구속이라도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법이 무서운 줄 알고 수임료라도 올려주죠. 지금처럼 중대재해 사고가 일어나도 그렇다할 처벌 사례가 안 나오니 처벌법의 실효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네요.”
한 대형로펌 변호사가 중대재해 사건 관련해 변호사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농담 섞인 이야기이지만 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에 관심도가 떨어진 것만큼은 진심이라고 한다.
중대재해사건 전문 변호사들은 사건 수사에서 판결까지 하세월인 탓에 의뢰인들은 경각심을 풀고 변호사 수임료도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던 당시 크고 작은 로펌들은 일사분란하게 전문팀을 꾸리며 대응에 나섰던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기업들을 자문하고 변호하며 큰 재미를 볼 것이라는 기대감이 상당했던 그때와 달리 시행 1년이 지난 지금 사뭇 다른 분위기가 흐른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7일 시행 1년을 맞는다. 그러나 상징적인 사건은 없다. ‘1호 발생’에 ‘1호 기소’만 있을 뿐 그 뒤를 잇는 사건이나 처벌을 받은 기업도 아직 없다.
1호 발생 사건은 삼표산업의 채석장 붕괴 사고다. 이 사건은 법 시행 이틀 뒤인 지난해 1월 29일에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이 사건을 5개월 넘게 조사한 뒤 삼표산업 대표이사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으나 아직 수사 중이다.
1호 기소 사건인 두성산업 집단 독성 간염 사건은 재판으로 넘어가자마자 위헌 시비에 휘말리며 제동이 걸렸다. 두성산업과 이를 변호하는 법무법인 화우는 중대재해처벌법 조항(제4조 제1항 제1호, 제6조 제12항)이 헌법의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원칙, 평등원칙을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헌재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모든 법원의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의 재판 진행은 멈춰진다.
행정기관의 조사와 수사기관의 수사, 법원에서의 판단이 늦어지며 변호사 업계에서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다른 로펌 관계자는 “법안이 워낙 모호하고 애매한 측면이 있어서 긴장한 기업들은 로펌의 도움을 많이 필요로 했고, 우리 역시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는 기대감이 많았다”라며 “그런데 지금 검찰에 들어가면 사건 수사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어떤 회장이 긴장을 하겠나”라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선례와 판례가 부족해 행정기관과 수사기관에서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 사건 전문인 한 변호사는 “노동청에서 먼저 사건을 조사한 뒤 수사기관으로 송치해야 하는데, 아직 사건 선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한 사건에 대해 6개월씩 검토하기도 하고 정작 수사가 급한 사건들은 뒤로 미뤄지는 현상이 있다고 한다.
경험과 노하우가 쌓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일. 이 변호사는 “법은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일 뿐 법으로 모든 사건을 막을 수는 없다”며 “중요한 사건을 우선적으로 골라 처벌 가치가 높은 사건을 위주로 신속하게 수사하고 빠르게 처벌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에 책임을 묻기 어려운 사건은 빠르게 내사종결하고, 그렇지 않은 사건은 검찰로 보내는 식으로 사건의 경중에 따라 처리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