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지붕 가족이었지만 이젠 20여 건이 넘는 소송으로 법정 싸움을 벌이는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된 치킨업체가 있습니다. 수많은 소송 중 판결이 하나라도 나오면 서로 승소했다고 자평하며 견해차를 보입니다. 또한 기업 간 민사소송뿐만 아니라, 상대편 수장을 겨냥한 형사소송에서도 입장이 확연히 다릅니다. 지난 10년에 걸쳐 치킨 전쟁을 벌이는 BBQ와 bhc 이야기입니다.
4일 치킨업계에 따르면 BBQ는 미원과 마니커 회사원 출신의 윤홍근 회장은 1995년 연천군에 1호점을 내고 치킨 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튀김용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로 닭을 튀겨 큼직하고, 바싹한 맛으로 2000년대 치킨 시장에서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죠.
bhc는 BBQ보다 2년 늦게 치킨 사업에 나섰습니다. 추억의 ‘별하나치킨’이 전신인데요. 사업 시작 당시 ‘콜팝’이라는 컵치킨으로 학생 고객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다 2000년 들어서며 별하나의 이니셜을 딴 bhc 치킨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죠.
치킨업계 3위까지 올라선 bhc였지만, 조류독감 파동으로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리며 2004년 30억 원에 BBQ에 인수되며 양사는 한가족이 됐습니다. 윤 회장은 ‘좌’ BBQ, ‘우’ bhc로 교촌치킨과 경쟁을 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흘러 BBQ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2013년 bhc를 미국의 씨티그룹 계열 사모펀드 CVCI(현재 로하틴)에 1130억 원에 매각합니다. 홀로서게 된 bhc는 다시 BBQ에 경쟁자가 된 셈입니다.
하지만 갈라서면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던가요? bhc가 순조롭게 새주인을 맞이하나 싶었지만, CVCI는 돌연 “가맹점 수를 부풀려 BBQ가 bhc를 원래 가치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팔았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2014년 국제상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법원에 손해배상분쟁을 신청합니다.
ICC는 CVCI 주장을 받아들여 2017년 BBQ에 약 98억 원의 배상 판정을 내립니다. 하지만 BBQ의 화살은 매각 업무를 맡았던 박현종 당시 BBQ 해외 부사장(현 bhc 회장)으로 향합니다. BBQ는 bhc 가맹점수를 부풀린 책임이 박 회장에 있다며 판결에 불복하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국제상업회의소(ICC)를 상대로 취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사이 박 부사장은 bhc가 매각되자 CVCI로 자리를 옮겨 bhc의 대표에 올랐고, 2018년에는 회사의 지분을 매입해 오너가 됐습니다.
1심에서 BBQ의 취소 소송은 기각됐습니다. 하지만 2심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죠. 서울고법 제18민사부는 지난달 13일 BBQ가 박현종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72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박 회장이 BBQ에 28억 원 규모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판결을 대하는 BBQ와 bhc의 입장은 사뭇 다릅니다. BBQ는 판결문에 대해 “법원이 bhc매각 당시 이를 기획하고 모든 과정을 주도했던 박 회장에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봤다”고 주장합니다.
BBQ는 근거로 판결문 내용인 “박 회장이 이 사건 주식매매계약에서 bhc에 대한 실사과정을 총괄하였다거나 위 가맹점목록의 구체적인 내용의 작성에 관여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한다”, “(박 회장은 BBQ 이사로서) bhc 매각에 관한 협상을 담당하였고, 원고(BBQ)들로부터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이 사건 주식매매계약서의 작성에 관한 사무를 위임받았으므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서 이 사건 주식매매계약서의 작성에 관한 사무를 충실하게 처리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등을 제시했습니다.
반면 bhc는 동일한 위 판결문에 대해 “박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법원이 판결했다. 과거 BBQ의 이사로서의 선관주의의무 위반 또는 이러한 업무와 관련한 신의칙상의 의무위반 책임을 물은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습니다.
쟁점은 bhc 매각 당시 박현종 회장의 책임 범위입니다. 박 회장이 총괄이냐 아니냐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배임 등 형사적 책임을 고려한 반응이라는 시각이 높습니다.
양사의 충돌은 민사소송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각 회사의 수장을 피고로 한 형사소송에서도 충돌하고 있습니다. 치킨업계의 법적 다툼이 기업 간의 송사를 넘어 오너 개인을 상대로 하는 형사소송까지 번지게 된 셈이죠.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2부는 지난 1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배임)로 BBQ의 윤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는데요. 윤 회장은 BBQ 지주회사 격인 제너시스와 BBQ가 그의 개인회사에 회사 자금 수십억여원을 대여하게 하고 상당액을 회수하지 못해 BBQ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습니다. 이 회사는 윤 회장의 일가가 지분 100%를 투자해 2013년 설립한 회사로 제너시스나 BBQ의 계열사가 아니며 현재 자본잠식 등의 이유로 매각된 상태입니다.
이 사건은 bhc가 2021년 4월 “윤홍근 BBQ 회장이 BBQ와 관련 없는 개인회사에 회사 자금 약 83억 원을 대여하게 해 손해를 끼쳤다”며 그를 배임 혐의로 성남수정경찰서에 고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경찰은 지난해 7월 불송치 처분했지만 bhc는 이에 불복해 그해 8월 이의를 신청하면서 이번에는 검찰이 해당건을 재판에 넘기게 됐습니다.
BBQ는 곧바로 입장문을 통해 “‘당사자 아닌’ bhc가 경쟁사 BBQ를 고사 시키고자 만들어낸 경쟁사 음해 고발 사건으로 실질적 피해자도, 피해금액도, 사회적 피해도 없는 무리한 기소사건”이라고 bhc에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또한 BBQ 향후 법적절차 통해 무죄로 밝혀질 것을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bhc의 박 회장은 2015년 7월 서울 송파구의 bhc 본사 사무실에서 경쟁사인 BBQ 직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 BBQ 그룹웨어 등 내부망 서버에 두 차례 접속한 혐의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박 회장은 지난해 6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박 회장은 곧바로 BBQ 내부 전산망에 접속하려는 의도가 없고, 실제로 접속한 사실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며 항소에 나섰죠.
BBQ는 박 회장의 유죄 판결에 즉각 환영 의사를 밝히기도 했죠. 제너시스BBQ측 법률 대리인은 “수년에 걸쳐 박현종 회장과 bhc가 자행한 불법 행위 중 극히 일부지만 비로소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다”며 “향후 박 회장과 bhc의 다른 불법 행위에 대해서도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것”이라며 끝나지 않는 난타전을 예고했습니다.
두 회사는 현재 20여건이 넘는 소송전을 펼치고 있는데요. 업계에서는 가장 중요한 민사소송으로 금액이 가장 큰 2400억 원 규모의 물류용역대금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540억 원 상당의 상품공급계약해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꼽습니다. 이 소송은 2017년 BBQ는 bhc가 신메뉴 개발정보 등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사유로 bhc가 BBQ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입니다.
2021년 1월에 열린 상품공급계약해지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16부는 bhc에 대한 BBQ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당시 배상액은 15년간 예상 매출 기준 340억 원, 소송비용 부담은 bhc 40%·BBQ 60%로 선고됐습니다. 이어 지난해 2월 열린 물류용역계약해지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는 bhc에 133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다만 소송비용은 bhc가 90%를 부담하게 헸고, 이에 BBQ는 즉각 항소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열린 2심 판결은 1심과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서울고법 민사4부는 bhc가 BBQ를 상대로 제기한 상품공급대금, 물류용역대금 청구소송에서 “피고(BBQ) 귀책사유로 계약이 해지된 것”이라면서 BBQ가 bhc를 상대로 낸 영업비밀침해 금지 등 청구소송에서도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BBQ가 bhc에 지급할 배상금 520억 원이 항소심에서 205억 원으로 줄면서 판결에 대한 해석에서 양사는 다시 입장이 갈렸습니다.
bhc는 곧바로 BBQ 측의 부당한 계약해지로 인한 상품공급계약 약 120억 원 및 물류용역계약 약 85억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받아 2심에서도 승소했다고 주장한 반면, BBQ는 1심 판결 뒤집고 bhc의 손해배상 청구액 대부분 기각하고, bhc가 약 280억 원 BBQ에 지급하라는 판결로 사실상 BBQ가 승소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양측의 법정 다툼은 언제쯤 종료될까요? 문제는 나열된 소송전 외에도 두 기업 간의 송사는 20여건에 달한다는 점입니다. 계속되는 소송전에 가맹점주들은 “혹여 브랜드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을까”라며 걱정스러워 합니다.
한 치킨업계 관계자는 “기업 대 기업을 넘어, 오너와 오너의 자존심 대결으로 번졌다”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송에 계속된 항소까지 양사 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만큼 법정 다툼이 완전히 종료되는 시점은 기약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