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에 자동차 산업 안갯속
현대차 30%ㆍ해외 RV 90%↑
수요 줄자 전기차 필두로 하락
완성차, 저금리 프로그램 시동
지난해 고물가와 고금리 등 세계 경기둔화로 한국 경제의 주력 품목인 반도체가 한파를 맞은 데 이어 올해 자동차도 경기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자동차 가격 상승세가 전기차를 필두로 주춤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자동차 가격이 줄어드는 흐름이 이어지며 ‘디플레이션’에 진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글로벌 완성차 기업은 차량 가격 인하, 구매 보조 프로그램 시행 등으로 실질적인 차량 구매 가격을 낮추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차량 가격을 낮춘 기업은 테슬라다. 테슬라는 지난달 미국, 중국, 아시아,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전 차종에 걸쳐 6~20% 낮춘 가격으로 차량을 판매하고 있다. 미국 시장 기준 모델3의 경우 1만 달러(약 1220만 원), 모델 Y는 1만3000달러(약 1580만 원)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지난달 30일 미국 포드는 전기차 ‘머스탱 마하-E’의 가격을 최대 8.8%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완성차 기업이 차량 가격 인하에 나서는 것은 △금리 인상 △산업 수요 감소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자국 산업 보호 정책 등으로 전반적인 소비자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자동차 가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급격하게 치솟았다. 억눌렸던 수요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왔지만,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물류 봉쇄 등 악재로 차량 생산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급격한 자동차 가격 인상을 일컫는 ‘카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의 차량 평균 판매가격(ASP)만 보더라도 차량 가격의 급격한 상승을 엿볼 수 있다. 2018년 현대차의 국내 시장 승용 모델 ASP는 약 3638만 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3분기 4784만 원 수준으로 약 30%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해외 시장 레저용차(RV)의 경우 3393만 원에서 6548만 원으로 92.9% 가격이 뛰었다.
하지만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다소 완화되고, 금리 인상 등으로 수요가 줄어들자 상황이 변했다. 최근 몇 년과 달리 완성차 기업은 올 한 해 수요 감소와 재고 증가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높은 차 가격과 우호적인 환율 덕에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현대차 내부에서도 올해는 차 가격 인하 압박과 제한적인 환율 때문에 수익성 방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의 경우 테슬라, 포드처럼 차량 판매 가격을 인하하는 대신 저금리 할부 등을 새로 출시하는 등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보조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줄줄이 출시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금리 인상 폭이 줄어들자 변동금리형 할부 프로그램을 내놨다. 대출 확정 시점보다 향후 금리가 낮아지면 대출 금리도 낮아져 소비자의 금리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쌍용자동차는 선수율에 따라 최대 60개월에 무이자 할부를, 르노코리아자동차와 한국지엠은 모델별 저금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기업별로 다른 방식을 선택했지만 결국 소비자의 구매력 감소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해 소비자의 구매 심리가 많이 위축된 상황이라 소비자 구매력이 중요한 문제”라며 “수출 주력모델이 노후화 초기 단계에 진입하는 만큼 지난해 수준의 시장 확대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