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신청접수가 시작된 특례보금자리론 열풍이 뜨겁다고 한다. 접수 사흘 만에 신청 규모가 7조 원가량에 달했다. 총공급 규모가 39조6000억 원이니 곳간의 5분의 1은 이미 비워진 셈이다. 정책자금이 1년 동안 풀릴 예정이라지만 이런 추세라면 접수창구는 조기에 닫힐 수밖에 없다.
특례보금자리론은 기존 정책상품인 안심전환대출과 적격대출을 통합해 한시 운영하는 고정금리 정책모기지(주택담보대출) 상품이다. 이런 성격의 상품이라고 흥행이 다 쉬운 것은 아니다. 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간 접수한 안심전환대출 신청은 공급한도의 40%에도 미치지 못했다. 같은 정책상품인데도 반응 강도가 다른 것이다. 이번 열풍은 왜 유독 뜨거운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되지 않고 대출 한도도 최대 5억 원으로 상향된 점 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혜택이 워낙 큰 것이다.
이 정책상품은 고금리로 인한 가계부채 악화 위험을 줄이려는 응급처방이다. 금융 당국도 “서민 차주들이 금리 경감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겠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흥행 조짐을 반길 일만은 아니다. 암초가 없지 않다. 그 무엇보다 DSR 규제 무력화 가능성이 우려스럽다. 이 규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과 함께 주담대 정책의 3종 세트다. 선진국은 수많은 금융 실패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DSR 규제를 제도화했다. 금융 안전을 지키는 규제를 무력화하는 정책상품의 흥행은 또 다른 ‘특례’를 부를 수 있고, 그런 특례 행진의 종착역은 당국의 선한 의도와 달리 혼란과 파국일 수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문제가 심각할수록 기본과 원칙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주담대, 나아가 가계부채 구조개선을 위한 시스템 개선이 급선무인 것이다. 고정금리형 주담대를 어찌 확대하느냐 하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다. 이를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가시화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던 20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그 이후 주택금융공사(주금공) 설립, 보금자리론 적격대출 안심전환대출 출시 등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고 이번엔 특례보금자리론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기준 가계의 고정금리대출 비중은 잔액기준 23.6%에 그치고 있다. 갈 길은 여전히 멀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만큼 정부가 정책적 대응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책모기지론이 효용성을 갖는 이유다. 그러나 시장 기능을 정상화해 위험지수를 낮추는 길도 넓게 열어야 한다. 은행이 장기고정금리 대출을 취급하되 이를 주금공에 매각하는 현행 방식을 넘어 합리적이고 획기적인 개선책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당국은 시중은행권이 보다 탄력적으로 장기고정금리 대출을 취급할 수 있도록 새 길을 열어야 한다. 장기자금조달을 위한 채권 발행 유인책 강구 등이 이런 맥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