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융복합이 필요한 2023 정부 업무계획

입력 2023-02-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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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동국대학교 석좌교수(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며칠 전 어느 조찬 모임에 참여했다. 자연스럽게 윤석열 정부 정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정부가 발표하는 2023년 주요 정책은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잘 안 보이고 국가시스템 선진화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또 식량 위기나 기후변화 대응 등 인류가 직면하는 글로벌 위기에 대응하는 국제적 어젠다(Agenda)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도 비슷한 느낌이다. 다만, 기업이 주도하고 정부는 뒤에서 지원한다는 큰 정책 추진 방향에 호응이 많았다.

수출 드라이브를 강화하고 기업 활력을 제고하며,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것도 잘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와 달리 기본과 원칙을 바로잡고 시장 기능을 중시하는 정책 기조는 바람직하다. 윤석열 정부가 직면하는 국제적 이슈는 너무나 많다. 이를 잘 녹여 우리가 주도하는 글로벌 어젠다를 추진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녹색성장(Green growth)’이라는 국제적 어젠다를 치고 나가 많은 박수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추진해 국가 경제 선진화를 추진했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어젠다’를 발굴하고 주도적으로 추진해 국가 위상을 높여야 한다. 이 과제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정책 융복합과 부처 간 협력이 긴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농식품부 업무의 주요 내용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굳건한 식량안보 확보다. 이를 위한 식량자급률 제고, 농업 생산성 향상방안이 중점 추진된다. 둘째는 농업의 미래성장 산업화이다. 이를 위한 스마트농업 확산, 미래 신산업 육성, 수출과 ODA(공적 개발 원조) 확대가 중점 추진된다. 셋째는 든든한 농가경영안전망 구축이다. 농가 경영위기 극복 지원, 유통 선진화와 수급안정이 추진된다. 넷째는 농촌주민·도시민을 위한 새로운 농촌 조성과 동물복지 강화이다. 이를 위한 농촌공간계획과 재생, 농촌사회서비스 강화, 동물복지 강화정책이 추진된다.

필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ODA 확대와 수출증진 대책이다. 세네갈, 카메룬 등 아프리카 대륙 횡단 거점 국가에 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아프리카 대륙횡단 벼 보급사업(Korea-Africa Rice Belt)’을 추진하는 것은 혁신적이다. 종자 보급부터 기술 지도, 교육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이 추진된다. 쌀 생산 증대사업은 우리나라가 성공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농촌진흥청이 탁월한 경쟁력을 가진다.

2019년 필자가 농촌진흥청장으로 재직 시 시작한 ‘코피아(KOPIA)’ 사업이 이제는 세계 24국에 설치됐고, 대륙 간 농업 협의체로, 또 ODA 사업으로 크게 발전했다. 글로벌 농업 협력 사업은 많은 성과를 나타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혁신 성공사례로 평가받는다. 전쟁이나 식량 위기, 곡물 가격 상승에 대비해 해외에 식량 도입기지를 구축하거나 곡물 유통망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농식품 수출증대를 위한 특별 추진단(K-Food+)을 구성하고 장관이 직접 단장을 맡아 진두지휘하는 모습도 바람직하다. 케이푸드 플러스 사업은 농식품뿐만 아니라 농기계, 스마트 팜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 스마트팜 수출이 여러 나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고, 농기계와 자재, 동물용 의약품, 반려동물 식품(펫 푸드) 등도 상당량이 수출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서 큰 규모의 수출 계약을 이미 달성했다. 다만 농식품 수출 과정에서 나타난 구조적 문제점은 고쳐야 한다.

예를 들면 지난해 김치 수출이 1억4082만 달러지만 김치 수입은 1억6940만 달러로 수입이 더 많다. ‘김치 종주국’ 명칭이 부끄러운 지경이다. 수출 효과가 생산 농업인 소득증대로 이어지도록 수출구조나 취약점을 개선해야 한다. 농식품 수출 대상을 식품뿐만 아니라, 약품, 기자재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한 것도 올바르다. 농산업의 영역이 먹거리를 넘어 비농업 분야와 생활 전반으로 확대되고 융복합되기 때문이다.

1월 4일부터 8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2023)가 개최됐다. 174개 국가, 3100개 기업, 10만 명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존 메이(JOHN MAY)라는 미국 농기계회사(JOHN DEERE)의 대표가 기조연설을 했다. 가전제품 전시회에서 농기계회사 대표가 기조연설을 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미래는 산업간 영역이 무너지고 융복합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미 농업과 비농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디지털기술, AI(인공 지능), 로봇, 무인화 등 다양한 융복합 기술이 세상을 주도한다. 세계 농기계 시장은 약 1570억 달러(200조 원) 규모이며 우리나라는 세계시장의 1.7%(2조3000억 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푸드 테크(Food-tech) 시장은 2021년 기준으로 2720억 달러에 이르며 국내시장 규모도 600조 원에 이르는 미래의 블루오션이다.

서울 상공을 헤집고 다닌 북한의 무인 항공기를 두고 논란이 많다. 책임소재를 두고 다툴 것이 아니라 융복합에 바탕을 둔 선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세계 최고라는 이스라엘의 ‘탈피오트’ 프로그램도 국방부, 경제부, 과학부, 산업부가 부서 간 벽을 허물고 완성한 융복합형 군대양성 프로그램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사이버 탈피오트’나 ‘사이버 예비군’을 만들겠다고 하니 다행이다. 융복합형 선진국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역점을 둔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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