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누가 뭐래도 한다”…메모리 세계 1위
반도체 한파ㆍ미중 패권전쟁 등 위기감 확대
이재용 회장, 기술ㆍ인재 투자로 정면 돌파
오는 8일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조부인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이 삼성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한 ‘도쿄 선언’이 40주년을 맞는 때다. 이 창업회장의 혜안으로 삼성은 반도체 신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현재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은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97% 급감했고, 올 1분기 반도체 부문 적자 전망도 나오는 등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에 이재용 회장 식(式) 위기 극복 방법에 이목이 쏠린다.
7일 재계에 따르면 1983년 2월 8일 당시 일본 도쿄에 있던 이 창업회장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반도체를 해야겠다”며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반도체 사업 진출 계획을 알렸다.
하지만 전사적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는 이 창업회장의 강한 의지에도 재계와 국외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도쿄 선언 전 삼성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손을 대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6년 만에 흡수합병이라는 초라한 끝을 맺은 전례가 있었다.
미국 인텔은 이 회장을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했고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까지 내놨다. 정부는 물론 직원들 사이에서도 의구심 섞인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불과 8개월 후인 1983년 11월, 삼성은 반도체 사업 첫 품목이었던 64K D램 자체 개발에 성공하며 기적을 일으켰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일본조차 개발에 6년이 걸린 제품이었다. 10년 뒤인 1993년에는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1위에 올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선 그동안 삼성전자가 과감한 투자와 초격차 기술로 1위 자리를 수성해왔지만 현재 처한 대내외적 상황은 그야말로 벼랑 끝이다.
하반기 시작된 반도체 한파 영향으로 지난해 4분기 DS 부문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6.9% 급감한 2700억 원에 그치며 적자를 겨우 면했다. 또 작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역대 최대 실적을 냈지만 주력인 메모리는 적자가 났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2019년 이재용 회장은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선포하며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만 2030년까지 133조 원을 투자하고 2021년에는 기존 계획에 38조 원을 더해 총 171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스템반도체 분야인 파운드리에서 업계 1위 대만 TSMC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3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5.5%, TSMC는 56.1%로 두 회사의 격차는 40.6%p(포인트)였다.
미ㆍ중 패권 전쟁으로 인한 ‘대중(對中) 반도체 투자 제한' 조치도 걸림돌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미국 정부의 대중 반도체 투자 제한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하기 위해 미국 현지로 임원들을 긴급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칩스법(반도체와 과학법)에 따라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받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국에 첨단 반도체 시설을 짓거나 추가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인근 테일러시에 신규 공장을 건설 중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쑤저우 지역 등에도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중국 매출이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해당 조항이 시행되면 반도체 경쟁력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이재용 회장은 기술과 인재, 조직문화를 강조함과 동시에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강화에 힘을 싣고 있다.
작년 8월 복권 후 첫 공식 행보로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기공식에 참석해 “차세대뿐만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25년 중순 가동 예정인 반도체 R&D 전용 라인을 포함해 2028년까지 연구단지 조성에 약 20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투자 지속을 통해 현재 위기 상황을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초격차 기술’ 확보가 해답”이라며 “차세대 기술 인재 영입은 물론 대형 인수합병(M&A) 역시 확실한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