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공개한 김주애의 모습에 국내외 언론이 크게 주목했습니다. 공개된 사진들에서 김주애가 부모인 김 위원장과 리설주를 양옆에 두고 정중앙에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김주애는 7일 건군절 기념 연회와 8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 연달아 참석했습니다. 7일 김 위원장 부부와 김주애는 군 장성 숙소를 찾았는데요. 기념연회장에서 부부는 김주애를 향해 상체를 살짝 틀어 앉았습니다. 양복 차림의 김주애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죠. 최고위 장성들은 세 사람 뒤에 병풍처럼 열을 맞춰 섰습니다.
다음날 열병식에서는 김주애가 김 위원장의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리설주는 둘의 한 걸음 뒤를 따랐는데요. 김주애는 레드카펫 정중앙을 걸으며 등장해 주석단 뒤편에 배치된 귀빈석 중앙에 앉았습니다. 주석단에 앉은 김 위원장보다 위, 귀빈석 가장자리에 앉은 리설주보다 중앙에 앉은 것입니다. 열병식 도중에는 주석단으로 나와 김 위원장과 함께 서기도 했습니다. 이는 ‘백두혈통’의 위상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인 동선 배치로 보입니다.
이외에도 김주애는 김 위원장의 볼을 어루만지기도 했습니다. 앞서 ICBM 발사 참관 때 김 위원장과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 모습을 떠오르게 하죠. 김 위원장의 자녀로서 친근함을 부각하려는 행위로 보입니다.
이날의 화룡점정은 10개 면, 사진 150장으로 이들의 행사 참관을 소개한 북한 노동신문 보도입니다. 무기나 행사장 전경 사진을 제외한 김씨 일가 사진 34장 중 거의 절반 수준인 15장에 김주애가 등장했습니다. 이중 김 위원장과 둘만 포착된 사진이 9장, 김주애의 독사진이 2장인데요. 김정은을 제외하고 독사진이 실린 인물은 김주애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3년생 둘째 딸을 후계자로 내세우는 듯한 모양새에 전문가들의 분석이 갈리고 있는데요. 최근 행보를 두고는 김주애가 후계자임을 과시하기 위함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김주애의 7, 8일 행사 참여 사실이 확인되자 워싱턴포스트(WP)는 8일(현지시간) “북한의 김정은이 딸이 후계자라는 가장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러한 외신 판단에는 열병식이 가장 결정적인 단서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김정일과 김정은이 열병식을 후계구도를 명확히 하는 계기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2년 북한군 창건 60주년 열병식에서 후계자로 공식 등장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2010년 10월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며 대내외에 후계자 지위를 공식화했죠.
북한 측이 김주애를 지칭하는 표현이 점점 격상하는 것에도 주목할 만합니다. 작년 11월 19일 북한 노동신문은 김주애를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표현했습니다. 같은 달 27일 조선중앙통신은 ‘존귀하신 자제분’으로 호칭을 바꿨죠. 이후 통신은 7일 건군절 기념연회를 보도하면서 ‘사랑하는’이란 표현과 함께 ‘존경하는 자제분’이라는 수식을 사용해 김주애의 높아진 위상을 드러냈습니다. 그간 북한에서 ‘존경하는’은 북한 최고지도자를 수식할 때 사용됐죠. WP는 “이 형용사는 ‘사랑하는’에서 분명히 업그레이드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김주애가 눈가림용에 불과하다는 추측을 제기합니다. 후계자라고 보기에는 김주애가 차녀인 데다 나이가 지나치게 어리다는 건데요. 전문가들은 한국보다 가부장제가 공고한 북한에서 여성 지도자를 내세우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만일 김 위원장이 김주애를 차기 지도자로 세우려 하더라도 북한 사회의 반발이 거셀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죠.
2013년생(만 10세)으로 추측되는 김주애의 나이도 걸립니다. 후계자로 공개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린 나이라는 건데요. 그동안 북한은 후계자 보호를 위해 상당기간 얼굴은 물론 이름이나 나이조차 극비에 부쳐왔습니다. 앞서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김정은은 미성년 때 공개되지 않았다가 주민들에게 공개와 함께 ‘3살 때부터 총을 쐈다’며 우상화 작업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는데요. 김주애에 대해서는 이런 시도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북핵을 연구하는 에드워드 하웰 영국 옥스퍼드 대학 정치학 강사도 김주애가 아직 어리다며 후계자 내정을 속단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김 위원장이 스위스 유학 경험 등으로 기존 북한 지도자와 다른 성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는 걸 고려하면, 김주애가 후계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김 위원장이 아버지인 김정일 사망 1년 전에야 후계자임이 공표돼 권력 기반을 다지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딸에게 ‘좀 더 쉬운 길’을 내주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김주애가 ‘진짜’ 후계자이든 연막이든, 북한이 전 세계 유례없는 4대째 세습을 시도한다는 건 분명합니다. 이미 김일성부터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자칭 ‘백두혈통’의 3대 권력 세습이 있었죠. 이조차도 근대 이후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김주애의 후계자 가능성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지만, 양측 모두 북한이 백두혈통의 권위와 영속성을 과시하기 위해 김주애를 내세운다는 견해에서는 일치를 보였습니다. 설령 김주애가 진짜 후계자가 아니더라도 김주애를 드높이는 최근의 기조도 김씨 일가 가계 우상화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