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대신 그림판, 포토샵 등 컴퓨터 그래픽 툴로 작업한 이미지를 주로 선보여왔던 홍승혜 작가가 3월까지 서울 종로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로 대중과 만난다. 직각의 픽셀을 주요 수단으로 활용했던 그간의 작업보다 한층 자유롭고 입체적인 형태로 완성된 가구, 설치미술품 등 여러 점이 공개된다.
9일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홍 작가는 “포토샵 격자무늬라는 내가 자초한 감옥에서 25년을 지냈다”고 자신의 지난 작업을 정의하면서 “오랜 세월 어떤 한 가지에 멈춰있다보니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시 배경을 전했다. 이에 “(그림판, 포토샵뿐만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을 거쳐 나온 다양한 형상으로 전시를 열었다”는 설명이다.
‘복선을 넘어서2’는 홍 작가의 변화한 작업관을 반영한 작품들을 다수 품고 있다. 2014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복선을 넘어서1’ 때와는 또 다른 전시물들로 목제 가구, 철제 조형물 등 작업 양상이 다채로워졌다. 모형 제작 공장, 철물 주조 공장, 출력소 등과 협업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홍 작가는 “직각의 픽셀로 추상적인 형태의 작품만 만들다가 2010년쯤 남자와 여자의 라커룸을 차별화하는 픽토그램을 작업하면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들게 됐다”면서 “사람을 등장시키니 할 이야기가 많아지더라”고 기억했다. “그때부터 야금야금 (작품이) 내러티브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톱니바퀴 형태의 ‘모던 타임즈’, 어린 시절 볼이 빨갛던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홍당무’ 등 벽에 건 형태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K3 전시관을 꽉 채운 설치미술은 이번 전시의 중요한 볼거리다. 홍 작가가 작곡 앱 게러지 밴드(Garage Band)를 활용해 만든 마림바 연주 음악을 깔고 조형물의 특정 위치에 영상을 비추는 등의 실험적인 형식으로 완성했다. 그는 “해가 져 빛이 완전히 없어졌을 때는 영상이 조명 기능을 하게 된다”면서 “시간 속에서 관람했을 때 더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국제갤러리는 관람객이 이 작품을 제대로 관람할 수 있도록 매주 수요일마다 오후 8시까지 전시를 연장 운영할 계획이다.
홍 작가는 이날 “작업 과정 자체가 내게는 인생사의 근심을 잊게 하는 진통제 역할을 해줬다. 그게 예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관객에게도 내 작품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복선을 넘어서2’는 다음 달 19일까지 서울 종로 국제갤러리 K1, K3 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