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엠ㆍ오스템임플란트 등 2020년대 행동주의 목소리 커져
행동주의 펀드발(發) 경영권 분쟁이 계묘년 증시를 집어삼켰다. 행동주의 펀드는 회사 경영에 관여해 단기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며 소송을 제기하였던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t Management)가 대표적인 행동주의 헤지펀드 사례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최근의 행동주의 펀드들은 소액주주를 등에 업고 경영권 이슈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2000년대 만 해도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많았다. 2000년 당시 정몽구 현대그룹 공동회장(현 현대자동차그룹 명예 회장)의 ‘왕자의 난’과 2005년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작고)이 촉발한 ‘형제의 난’이 대표적이다. 효성가도 형제들끼리 반목을 거듭했다. 2014년에는 이른바 ‘땅콩회항’으로 촉발된 한진그룹의 오너리스크는 그룹 3세 간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졌다. 2018년 한진칼 지분을 사들인 KCGI가 2020년 한진칼 3대 주주인 반도건설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3자 연합’을 결성해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했다. 하지만 2020년 11월 산업은행이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요 주주(10.66%)로 올라서고, 조 회장의 경영권을 지지하면서 3자 연합은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2020년대를 전후로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의 경영권 분쟁은 행동주의 펀드에서 시작됐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SM의 지배구조와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을 문제 삼았다. SM 경영진이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를 수용하고, 카카오가 SM의 2대 주주로 합류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발발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카카오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반발한 최대주주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SM을 상대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했다. 이어 하이브가 이 총괄의 SM 지분 18.5% 중 14.8%를 취득하기로 하면서 SM 경영권 분쟁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 하이브-이수만 진영에 유리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는 가운데, 얼라인파트너스가 하이브의 SM ‘공개 매수 가격’에 제동을 걸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하이브의 에스엠) 공개 매수 가격 12만 원은 너무 낮은 가격이다. 공개매수 가격은 대폭 인상돼야 한다”며 “SM의 일반 주주와 하이브 주주들 간에 이해관계 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자세한 입장은 추후 발표할 예정”이라며 또 한 번의 공방을 예고했다.
KCGI(강성부펀드)는 오스템임플란트의 경영권 분쟁을 촉발했다. KCGI는 공개주주서한으로 오스템임플란트의 내부통제와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했다. KCGI는 지난해 말부터 오스템임플란트 지분 5% 이상을 확보하고 본격적인 주주 권익 제고 활동에 나서 왔다. 1월 초 기준 KCGI의 지분율은 6.57%다.
사모투자 운용사 유니슨캐피탈코리아(UCK)와 MBK파트너스는 특수목적법인(SPC) ‘덴티스트리인베스트먼트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오스템임플란트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덴티스트리가 최대주주에 올라선다면, 최규옥 회장은 2대 주주로 물러나게 된다. KCGI는 덴티스트리가 제시한 오스템임플란트의 공개매수에 참여하기로 했다. KCGI는 2020년 한진칼 경영권 싸움에도 중심에 있었다. 대한항공 최대주주 일가가 ‘갑질 논란’으로 사회적 공분을 산 뒤 KCGI는 한진칼 지분을 끌어올리며 대주주와 주총에서 표대결을 펼쳤다.
지주사 전환 계획을 밝힌 교보생명은 재무적 투자자(FI) 어피너티 컨소시엄과의 법적 공방 리스크가 남아 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풋옵션 분쟁을 벌이고 있는 어피너티의 교보생명 보유지분은 24.01%다. 신 회장 및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은 36.91%다. 적지 않은 지분을 보유한 어피너티가 교보생명의 지주사 전환을 견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행동주의 펀드의 입김은 더 강해지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전세계 행동주의 캠페인 건수는 2013년 607건에서 2018년 922건으로 늘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세계적으로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주요 타깃이 된 기업의 수가 2014년 645개에서 2019년 830개로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행동주의 펀드는 과거 ‘기업 사냥꾼’, ‘먹튀’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소액주주의 의견을 대변하는 창구 역할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주환원과 경영 투명성 제고 등의 순기능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학교의 ‘주요 ESG 이슈에 대한 민간 주주참여(Private Shareholder Engagements on Material ESG Issues)’ 연구결과에 따르면, 성공적인 행동주의 활동이 진행된 기업들의 주가는 캠페인 시작 이후 약 14개월간 평균적으로 피어(peer·동종업계 경쟁기업) 대비 2.4% 높았다. 특히, 핵심 ESG 요소에 대한 행동주의 활동은 기업의 수익성, 매출, 비용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기업의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해 경쟁력을 오히려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행동주의 펀드가 장기간 기업을 공격할 경우, 기업이 경영권 분쟁과 지분 확보 대응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서 회사의 성장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은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한 주주의 주주권 남용에 대한 방지책과 기업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코스닥 업계 관계자는 “단순 주가 부양을 위한 이슈화를 목적으로 하는 일부 헤지펀드의 무부분별한 주주제안이나 부정한 목적의 주주명부 열람청구 등은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 피해를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