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요즘 가장 힘든 세대는 노인들이 아닐까 싶다. 몸 움직임이 왕성하던 때와는 확연히 달라 번번한 일자리를 잡기 힘들고 성한 곳이 없어 병원을 전전하다가 치매라도 걸리면 가족들로부터도 외면받는다. 질곡의 시대를 겪으며 산업화 역군으로 허리 휘도록 일해 선진국 반열에 올라갔으니 존중과 존경을 받아 마땅하지만 혹여 ‘틀딱’이라고 천대받지 않으려면 훈계는 커녕 훈수도 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노인과 관련해 가장 쟁점으로 떠오른 건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다. 서울시는 만성적인 지하철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임수송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지하철 무임수송 손실 비용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 발발 전인 2019년 기준 무임승차 인원은 2억7000명을 웃돌고 이 중 82%가 노인이다. 또 연평균 지하철 적자 규모는 9200억 원에 달하는데 연간 1825~2444억 원이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이다. 서울 지하철 무임승차 대상 연령을 만 70세로 올리면 무임손실 비용의 25~34%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서울연구원의 계산이다.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 시장은 16일에 열린 ‘노인 무임승차 정책토론회’에서도 “1984년 정부에서 도시철도 무임수송 제도를 도입하던 당시 서울의 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3.8%였으나, 지금은 17.4%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무임승차는 공공서비스 비용(PSO)이므로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임수송에 따른 손실을 더이상 서울지하철 재정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울도시철도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어디까지나 지자체 사무”라고 선을 긋고 “중앙정부가 빚을 내 재정 상태가 좋은 지자체를 지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18%를 넘는다. 초고령사회 문턱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그 비율은 2035년에 30%, 2050년에는 40%에 이를 전망이다. 저출생·고령화가 심화된 지금 노인 문제는 사회 곳곳에서 더 다양하게 터질 게 분명해진 셈이다. 기초연금·돌봄·사회적 고립·일자리 등 더 복잡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에서 무임수송 문제 하나 처리 못한다면 국력에 걸맞는 사회적 역량이 아니다. ‘줬다 뺏는다’고 생각하면 섭섭할 법도 하지만 노인들 스스로도 평균 72.6세는 돼야 노인으로 인식(서울시 조사)하고 있는 만큼 논의의 물꼬는 틜 것으로 보인다.
“세수를 할 때면 세숫대야로 새어나가고, 밥을 먹을 땐 밥그릇을 스쳐가고, 침묵을 지킬 때엔 눈동자를 밟고 빠져나간다.” 수필 ‘아버지의 뒷모습’으로 잘 알려진 중국의 시인 겸 평론가 주쯔칭(朱自淸·주자청)은 산문 ‘총총(匆匆)’에서 세월을 이렇게 표현한다. 세월은 나이에 비례한다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말도 틀린 표현이란 걸 실감한다. ‘나이의 제곱 쯤에 비례한다’가 더 맞을듯 싶다. 세수할 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처럼 인생, 한 순간이다.
누구나 나이들고,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다. 지금 노인의 삶은 그대로 우리의 미래다. ‘잘못한 거라고는 설날 떡국 한 그릇 더 먹은 것밖에 없다’는 푸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불평으로만 볼 게 아니다. 지하철 적자가 무임승차를 해결한다고 다 해소되기는 난망이지만 오 시장의 발의대로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무임승차 문제를 비롯한 노인 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김동선 사회경제부장 matth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