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술’로 불리는 소주 가격이 올해 또 인상될 것으로 보입니다.
19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서 소비자물가지수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주류 가격은 전년 대비 5.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외환위기(IMF) 직후인 1998년(11.5%)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입니다.주류 물가 상승률은 두 자릿수를 기록한 1998년 이후 2003년(4.7%), 2009년(4.2%), 2013년(4.6%), 2017년(4.8%)에 4%대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고는 매년 2%대 이하에 머물렀는데, 지난해에는 6%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특히 소주는 7.6%로 2013년(7.8%)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으며, 맥주도 5.5% 상승해 2017년(6.2%) 이후 가장 많이 올랐습니다.
곧 식당에서 ‘소주 1병 6000원’이라는 가격표를 보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며, 소주가 서민의 술이라는 이야기도 이제 옛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깐! 식당에서 판매되는 소줏값은 출고가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지난해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출고가는 1081.2원에서 1163.4원으로 82.2원 올랐는데요. 이 인상 금액은 100원도 안 되지만, 식당에서는 1000원가량 오른 가격으로 판매됐습니다. 이 격차는 어디서, 무엇 때문에 발생한 걸까요?
먼저 주류 출고가 인상 배경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고가 인상에는 원·부자재 가격 상승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소주는 원료인 주정(酒精·에틸알코올)에 물과 감미료를 섞어 만드는데요. 국내 9개 주정 제조사가 만든 주정을 국내 독점 유통하는 대한주정판매는 지난해 10년 만에 주정 가격을 7.8% 인상했습니다. 주정의 원료가 되는 타피오카의 가격이 지난 4년간 꾸준히 상승하면서 원가 부담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격 인상이 실적에 도움을 주진 못했습니다. 오히려 대부분 주정 제조사의 지난해 실적은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죠. 최근 진로발효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38억 원으로 전년 대비 66.6% 감소했다고, MH에탄올은 영업이익이 219억 원으로 전년 대비 6% 감소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올해 주정값이 작년에 이어 또 오를 가능성이 큰 이유입니다.
제병업체의 소주병 공급 가격도 인상됐습니다. 인상 값은 병당 180~220원으로, 20% 넘게 올랐습니다.
맥주의 경우는 어떨까요? 맥주는 보리 등 원·부자재 가격과 더불어 주세까지 인상되며 부담이 커졌습니다. 19일 기획재정부와 주류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맥주에 붙는 세금은 1L당 885.7원이 됩니다. 이는 같은 기준 지난해보다 30.5원 오르는 것인데요. 지난해 인상 폭(1L 당 20.8원)보다 46.6% 큰 수치입니다.
여기에 물류비, 전기료, 인건비의 오름세가 계속되는 것도 출고가 인상에 영향을 줬습니다. 원·부자재, 병 가격, 에너지 가격, 환율 상승 등 요인이 모두 겹쳐 출고가 인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출고가 인상은 곧 판매가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주류업체들은 지난해 일제히 출고가를 올렸는데요.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2월 참이슬·진로 출고가를 3년 만에 7.9% 올렸고, 3월엔 테라·하이트를 7.7% 인상했습니다. 롯데칠성음료도 3월 처음처럼 출고가를 3년 만에 6~7% 올렸으며, 11월에는 클라우드 출고가를 8.2% 높였습니다. 오비맥주도 3월 6년 만에 오비·카스·한맥 출고가를 평균 7.7% 올렸고, 한라산소주는 출고가를 8%가량 인상했죠.
업체들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출고가 인상을 결정한다면, 마트나 식당에서 파는 주류 가격은 더 큰 폭으로 오르게 됩니다.
지난해 소주는 1병 출고가가 85원가량 올랐는데, 마트와 편의점 등에서의 가격은 100원에서 150원 올랐습니다. 유통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원가 부담까지 술값에 얹는 경향이 있어, 소비자가 사는 술 가격은 더 비싸지는 것입니다.
통상 주류 유통은 주류제조사·수입업체→주류 취급 면허 도매상→소매점→소비자 순으로 이어집니다. 주류 공장에서 1100원대에 출고된 소주는 도매상에게 넘어가고, 300~500원가량의 마진이 붙어 소매점으로 유통됩니다. 소매점이 넘겨받는 소주는 병당 1400~1600원대지만, 소비자가 구입하는 가격은 병당 4000~5000원입니다. 인건비, 운송비, 임대료 상승 등 인상 요인 등을 명목으로 각종 마진이 더 붙는 것입니다. 식당 판매가격의 인상 폭이 출고가보다 더 커지는 이유죠.
지난해 외식산업연구원이 일반음식점 외식업주 130명을 조사한 결과, 55.4%가 소주 출고가 인상에 따라 소주 판매가격을 올렸거나 올릴 예정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미 올린 업주들은 병당 500~1000원을 인상했다고 전했죠.
이와 비슷한 추세로 출고가가 오른다면, 이제 식당에서는 소주를 5000~6000원에 판매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서울·경기 일부 식당에서는 소주 1병을 6000원에 판매하는 곳이 다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맥주 1병이 7000~8000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감안했을 때, ‘국민 술’로 불리는 ‘소맥’(소주+맥주)을 마시려면 약 1만4000원을 내야 하는 셈입니다.
판매 채널로 본다면 대형마트에 비해 편의점이 비싼 소주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하이트진로가 참이슬 출고가를 7.9% 인상했을 때, 편의점은 1800~1950원으로 8.3% 인상한 바 있습니다. 올해 제조사들이 출고가를 인상한다면, 소주는 편의점에서도 2000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주류 업계의 고민도 커지는 상황입니다.
업계가 지난해 소주·맥주 출고가를 3~6년 만에 일제히 인상한 것은 국민 정서상 수년간 보류해오던 주류 가격 인상 요인이 축적되다가 한꺼번에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주류는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 반응이 민감한 품목인 것이죠. 업계가 2년 연속 출고가를 올리기엔 부담스러워 인상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등 주류업체들은 아직 올해 출고가 인상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으며, 물가와 시장 상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11월 맥주 출고가를 올린 만큼, 올해 추가 인상은 최대한 자제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주류 출고가와 판매가의 격차는 일종의 ‘나비효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제조사의 출고가가 인상되면 편의점·마트 등 소매점 판매가는 이보다 큰 폭으로 오르며, 식당과 술집에서는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니까요. 퇴근길에 마시던 술 한잔이 점차 부담스러워지며, 주당(酒黨)들에겐 아쉬운 상황이 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