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수비수인 김민재는 최근 수비의 고장 이탈리아에서도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고 있다. 탈아시아급 피지컬이 부각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은 짧은 보폭으로 민첩하게 움직이는 ‘잔발’이다. 김민재는 공격수의 움직임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잔발을 통해 기민하게 반응한다.
국내 가상자산 규제 당국과 국회는 축구로 따지자면 수비수의 입장이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과 유럽 규제 당국의 움직임에 따라 어떻게 행동할지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취재 하며 만난 업계 관계자 대부분은 우리 당국이 ‘잔발’에 능숙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이들은 “글로벌 시장인 만큼, 당국이 선제적으로 움직이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최소한의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며 불확실성을 조금씩이라도 해소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국내 가상자산 규제는 ‘잔발’은 커녕 움직임이 별로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업계가 기다렸던 토큰 증권(ST)은 정말 ‘증권’이었고, 금융위가 제시한 가상자산 증권성 판단 가이드라인은 모호하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국회 역시 첫 번째 과제로 꼽았던 투자자 보호 법안조차 아직까지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어, 업권법 제정도 요원한 상황이다.
그러는 동안 당국과 국회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던 미국은 증권성 판단 관련 사례를 쌓아가는 한편, ‘증권형 토큰’ 사업을 전개하는 등 가상자산 제도화를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남들보다 과감하게 움직여, 하루 빨리 법과 제도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는 법과 제도라는 보폭이 큰 방법보다, 보폭은 크지 않지만 민첩하게 시장 흐름을 따라가고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잔발’ 정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다행히 금융당국이 최근 토큰증권 TF를 구성해, 의견 수렴 및 증권성 판단을 지원하는 등 ‘잔발’을 밟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가상자산 규제가 상대를 기민하게 따라가는 ‘김민재’를 닮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