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연·병 생태계 미비 ‘절반의 성장’…컨트롤타워 절실
국내 바이오클러스터의 현황을 한 마디로 축약하면 ‘각자도생’이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각자 특기를 찾아가며 기반을 쌓았지만,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기엔 갈 길이 멀다. 바이오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충분한 인프라가 부족하고 구심점이 없어 얼마 안 되는 투자는 여기저기 흩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생산·수출 등 해마다 규모는 커지고 있으나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하나 없는 절반의 성장이다. 혁신신약과 기술력 중심의 제약·바이오 선진국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이에 따라 K바이오의 도약을 이끌 바이오클러스터의 전략적 육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바이오클러스터의 성공을 위한 핵심 구성요소는 기업, 대학, 연구소, 병원(산·학·연·병)이다. 대학이 우수한 인력을 양성·배출하고 연구소가 기초연구를 수행하면, 병원은 임상시험을 및 중개연구를 맡고 기업은 사업화와 제품 생산을 하는 구조다. 여기에 공공기관이 제도적 기반과 인프라를 제공하면 바이오생태계가 완성된다.
이를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한 모델이 전 세계 최대 성공 사례로 알려진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다.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케임브리지 지역에 있는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는 1970년대부터 형성됐다.
이곳에는 하버드 대학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보스턴 대학교 등 세계 랭킹 최상위권 대학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을 비롯한 20여 개의 대형병원을 끼고 있다. 풍부한 인재와 연구 자원을 바탕으로 머크, 화이자,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BMS), 노바티스, 사노피 등 글로벌제약사와 바이오젠, 젠자임, 모더나 등 바이오테크가 자리 잡으면서 글로벌 바이오산업을 주도하고 신규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와 함께 미국 주요 바이오클러스터로 꼽히는 샌디에이고 바이오클러스터도 촘촘한 산·학·연·병 연계를 자랑한다. 바이오·의학분야 연구에 강한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UCSD)를 중심으로 솔크 연구소(Scripps Research Institute), 스크립스 리서치(Scripps Research Institute)와 같은 세계적인 기초 과학 연구기관, 샌디에이고 메디컬 센터 등이 모여 있다. 일라이릴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등 글로벌제약사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벤처캐피털이 들어섰다.
반면 국내에서는 산·학·연·병을 제대로 갖춘 바이오클러스터를 찾기 어렵다. 연구·개발(R&D) 인프라를 갖춰놨으면 사업화할 기업이 부족하고, 다양한 기업이 밀집해 마땅한 연구중심병원이나 대학·연구소가 없는 식이다.
정부는 한국의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를 목표로 인천 송도에 ‘K-바이오 랩허브’를 구축하기로 했다. 전용 연구지원시설을 짓고 혁신 창업기업을 키우는 것이 주요 골자다.
송도 바이오클러스터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이 위치한 곳이지만, 바이오의약품 생산에 치우쳐 있다. 앞서 신약·의료기기 R&D 단지로 대구와 오송을 선정·조성했던 정부는 이를 활용하는 대신 다시 돈을 들여 신규 인프라를 조성하는 방향을 택했다.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는 9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약 2조 달러(약 2600조 원)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했다. 누구든 부러워할 만한 성과다.
여기엔 막대한 지원이 선행됐다. 매사추세츠주 정부는 생명과학 분야에 2008년부터 10년에 걸쳐 10억 달러(약 1조3200억 원)를 투자했으며, 이후 6억2300만 달러(약 8200억 원)를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또한, 10개 이상의 정규직 일자리를 만든 기업에는 세금 혜택을 제공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앞장섰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24억 달러(약 3조 원)를 쏟아부었다. NIH는 샌프란시스코(15억 달러), 샌디에이고(8억200만 달러) 등에도 펀드를 지원했다.
이에 비하면 국내 투자 규모는 소박하다. 일례로 2031년까지 추진할 K-바이오 랩허브 구축사업은 총 사업비 2726억 원 규모로, 정부가 1095억 원, 인천시가 930억 원을 각각 분담한다.
또 다른 문제는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여러 부처가 중복된 사업 목표를 설정하고 유사한 사업을 벌이면서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에 걸림돌이 되고, 과제를 체계적으로 분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역별 바이오클러스터는 물론 제약·바이오업계는 지속해서 정부 주도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윤석열정부가 국무총리 산하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를 약속해 숙원을 이루는 것 같았으나, ‘작은 정부’를 추진하면서 사실상 무산될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