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복권 판매소에서 2등 당첨 로또복권이 103장 나오며 ‘무더기 당첨 조작설’이 불거졌습니다. 이달 4일 1057회 로또 추첨 결과, 5개 번호와 보너스 번호를 맞춘 2등은 664건 나왔는데요. 이 중 103건이 서울 동대문구 왕산로 소재의 한 슈퍼에서 나왔습니다. 당첨금은 모두 7억1027만5640원에 달합니다.
매 회차 2등 당첨 건수가 100건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는 한 판매점에서만 한 회차 2등 전체에 달하는 당첨 건수가 무더기로 쏟아진 것입니다. 특히 수동 102장 중 100장은 같은 날짜, 같은 시간대에 판매돼 같은 사람이 구매한 것으로 추정되며 ‘당첨 번호 조작’ 의혹을 불렀습니다. 조작설 핵심 중 하나는 ‘공 무게를 통해 조작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논란이 확산하자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는 6일 “선호 번호가 우연히 추첨이 된 결과로, 어떤 경우에도 조작은 불가능하다”며 “온라인복권 추첨은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되며, 방송 전에 경찰관 및 일반인 참관하에 추첨 기계의 정상 작동 여부, 추첨 볼의 무게 및 크기 등을 사전 점검하고 있어 조작의 가능성이 있을 수 없다”고 논란을 일축했습니다.
그러나 조작을 의심하는 눈초리는 여전합니다. 로또 1회 최대 구매 액수인 100장을 똑같은 번호로 구입한 건 번호를 미리 알고 있기에 가능했다는 주장도 팽배한 상황이죠.
사실 당첨 번호 조작 의혹은 그간 숱하게 제기돼 왔습니다. 이번 로또 당첨 결과를 계기로 의혹이 또 한 번 불거진 것입니다. 당첨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흘러나오는 복권 조작 의혹, 그 사례들을 살펴봤습니다.
2등에 당첨된 로또복권이 무더기로 나오면서, 한 사람이 5년간 동행복권이 운영하는 전자복권에 300회 이상 당첨됐다는 의혹도 함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1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전부 동일인으로 보이는 동행복권 당첨자’라는 내용의 글이 게재됐는데요. 작성자 A 씨는 “2018년 1월 21일부터 2023년 1월 21일까지 ‘jun**+숫자’ 형식의 아이디가 전자복권에 329회 당첨됐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가 언급한 아이디는 ‘jun**+숫자’ 조합인데, 이때 제일 뒤에 배치한 숫자는 0부터 9까지로 ”아이디를 돌려 쓰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 상황이죠. A 씨는 해당 아이디의 주인공이 전자복권으로 매주 최소 10만 원에서 최대 5억 원의 당첨금을 탔다며 조작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한 누리꾼이 이와 관련한 문의 글을 남기자, 동행복권 측은 “전자복권 당첨 시 고액당첨자 목록은 당첨자 보호를 위해 아이디를 축약해 표기하고 있다”며 “아이디는 ‘계정 앞의 3자리+**+계정 뒤의 1자리’로 축약하며, 이는 아이디 길이와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당첨자 아이디는 모두 축약해 6자리로 표기되는 점 이용에 참고 부탁드린다”고 설명했죠.
다만 일각에서는 “아이디 앞 세 자리 ‘jun’이 일치하는 경우도 이렇게 많진 않을 것”이라며 여전히 의구심을 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 제1019회 로또복권 추첨에서는 1등 당첨자가 무려 50명이나 나오며 조작 논란이 확산했습니다. 이는 2002년 12월 로또 발행이 시작된 뒤로 역대 최다 기록이라 더욱 이목을 끌었죠. 직전 최다 기록은 2013년 5월 546회의 30건입니다.
당시 1등에 당첨된 50건 중 42건이 번호를 직접 표기해 구매하는 수동으로 가장 많았고, 자동이 6건, 반자동이 2건이었습니다. 직전 회차에서 1등 당첨은 2건으로, 25배 많은 당첨자가 나오며 한 게임당 1등 당첨금액도 약 123억6000만 원에서 4억4000만 원으로 급감했습니다. 역대 최저 당첨금(546회)은 4억954만 원입니다.
또 당첨 번호 5개와 보너스 번호가 일치한 2등도 직전 회차보다 62명이 늘어 75명이 나왔으며, 당첨 번호 5개를 맞춘 3등은 5823명으로 두 배 넘게 많았습니다. 1019회 총판매금액도 1028억488만2000원(1게임당 1000원)으로 직전 회차(1011억5180만5000원)보다 1.63% 증가했죠.
당시 누리꾼들은 수동 1등 당첨자가 많은 것을 두고 ‘기출 번호’를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1019회 로또 1등 번호는 ‘1, 4, 13, 17, 34, 39’였는데 이는 그간 1등에 가장 많이 당첨된 번호들입니다. 동행복권 당첨 번호별 통계에 따르면 2002년 이후로 ‘34’는 당첨 번호로 177회 등장해 역대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은 174회(3위), ‘17’과 ‘13’은 172회(5위), ‘4’는 168회(8위) 나왔죠. 역대 당첨 빈도 상위 8개 번호 중 6개가 1019회 당첨 번호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조작’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사전 예정된 당첨 번호가 있었고, 이게 다수에게 누출되면서 당첨자가 다수 나왔다는 것이죠.
당시 복권위는 “우연히 추첨이 된 결과”임을 강조했습니다. 복권위는 “로또복권이 한 회차당 1억 장가량 팔린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구매자가 균등하게 번호 조합을 선택하면 1등 당첨자는 12명 내외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도 “현실에서는 구매자가 특정 번호를 집중 구매하는 현상이 발생해 당첨자가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구매자들이 선호하는 번호의 조합이 있는데, 당시 당첨 번호에 선호하는 번호가 다수 포함됐다는 것이죠.
2021년 11월에는 시장에 유통된 즉석 복권에서 일부 문제점이 발견돼 20만 장을 회수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당시 기재부 복권위와 동행복권에 따르면 스피또1000 제58회 복권 6매에서 육안상 당첨 결과와 판매점 시스템상 당첨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그해 9월 발생했습니다. 스피또1000은 동전 등으로 복권을 긁어 당첨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1000원짜리 즉석 복권입니다.
판매점은 복권에 인쇄된 당첨 결과가 시스템상 데이터와 일치하는지 확인한 뒤 당첨금을 지급하게 돼 있는데요. 복권에는 당첨됐다고 적혀 있는데, 시스템상에는 당첨이 아니라고 나와 당첨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 판매점이 이 같은 문제를 신고했습니다.
조사 결과 복권 4000만 장 자체는 정상적으로 인쇄됐으나, 인쇄 사업자가 동행복권에 전달한 복권 당첨 데이터에 일부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동행복권은 기재부 지시에 따라 문제의 소지가 있는 복권 20만 장을 특정해 회수, 오류가 신고된 6매에 대해서는 당첨금(각 1000원)을 지급했죠.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별다른 공지는 없었습니다. 검증 오류에도 잔량(2520만 장)을 계속 판매했다는 지적도 이어졌죠. 그러자 기재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데이터 검증과 테스트 등을 통해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복권이 즉시 특정됐고, 이 물량(약 20만 장)이 통상 판매되지 않는 물량(약 40만 장)보다 적은 점 등을 감안해 별도 공지 없이 계속 판매하기로 조치한 것”이라며 “이러한 조치 결과로 불일치 문제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며, 복권 판매율 및 등위별 당첨자 수 등은 다른 회차와 큰 차이가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해당 회차에서 1등 복권 당첨자는 나오지 않았는데요. 기재부는 이에 대해서 “다른 회차에서도 1등 및 2등이 발생하지 않은 사례는 있다”며 “이는 당첨 후 미수령, 분실 및 폐기 등 다양한 가능성에 기인한다”고 부연했습니다.
이처럼 수차례 불거진 로또 당첨 조작 의혹에 기재부는 재차 같은 답을 내놨습니다. 이미 2009년 감사원이 전문가를 동원해 복권 시스템을 검증한 결과, 당첨 번호 조작은 현실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는 것입니다.
복권위 관계자는 “당첨자를 조작하기 위해서는 추첨 방송이 끝나는 토요일 오후 8시 45분부터 9시까지 메인시스템, 백업시스템, 제1감사시스템, 제2감사시스템에 동시 접속해 자료를 위·변조하고, 복권 발매기로 실물 티켓을 인쇄하는 한편, 추첨보고서까지 조작해야 가능한 상황이므로 실제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이런 로또 조작설로 로또 당첨 번호를 예측한다는 업체들이 주목을 받다는 점입니다. 1등에 당첨된 이들이 ‘모두 업체에서 당첨 번호를 받은 것 아니냐’는 추측 때문입니다. 사실 이 같은 수법은 ‘로또 사기’에 해당할 수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털사이트에 ‘로또 당첨 번호’를 검색하면 당첨 번호를 무료로 제공해준다는 업체들이 다수 발견됩니다. 이 같은 업체들은 게시물에 ‘정밀 분석’, ‘최첨단 시스템’, ‘실제 당첨 영수증’ 등의 키워드를 넣어 신빙성을 더하죠. 이들은 주로 분석 시스템을 이용해 로또 번호를 받으면 1등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고 주장합니다. 비싼 서비스에 가입할수록 당첨 확률이 높다거나, 가입 기간 동안 당첨이 되지 않을 경우 전액 환급, 혹은 무상 서비스 제공 등 여러 상술로 계약 체결을 유도하죠.
그러나 막상 소비자가 환급을 요구하면 약관의 환급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거나 환급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환급 이행을 거절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견됩니다. 소비자 피해 역시 매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로또 당첨 번호 예측 서비스 관련 피해 구제 접수 건수는 2018년 41건, 2019년 88건, 2020년 227건, 2021년 332건으로 보고됐습니다.
전문가들은 “로또엔 당첨 번호 패턴이나 당첨 확률을 높일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이전의 당첨이 다음 당첨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과거 1등 당첨에서 많이 나온 숫자를 조합한다고 하더라도 당첨 확률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로또 번호 예측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KBS와의 인터뷰를 통해 “(업체들은) 시스템이 있다고는 하는데, 막상 보면 없다”며 “방송한 당첨 번호를 보고 포토샵을 이용해 지워버리고 회차를 바꾸는 식의 작업을 한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회원이 사이트 접속을 건너뛴 주에는 그 주 당첨 번호를 정확히 제공했던 것처럼 기록을 바꿔치기하기도 한다”며 “어쨌든 썩은 동아줄이니까 믿지 마시라. 모두 사기”라고 전했죠.
한국소비자원 측은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복권은 소액으로 건전하게 즐기고 당첨 자체에 과몰입하지 말 것 △사업자가 제시하는 당첨 가능성 등을 맹신하여 계약을 체결하지 말 것 △계약 체결 시 계약 내용 외에 사업자가 추가로 제안한 내용은 약정서 작성, 녹취 등 입증 가능한 자료로 확보할 것 △로또 예측 서비스 계약은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비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는 ‘계속 거래’에 해당하므로 해지를 원할 경우 사업자에게 내용 증명을 우편으로 통보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경기가 불황일수록 복권은 잘 팔린다고 하죠. 실로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복권 판매액은 6조4천292억 원으로 전년 대비 7.6% 증가했습니다. 특히 연간 복권 판매액이 6조 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가 처음입니다.
복권위의 ‘2023년도 복권기금 수입·지출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로또복권과 연금복권 등 12종의 복권 판매 예산으로 6조7441억 원을 책정했습니다. 지난해 판매실적과 비교해 2000억 원 넘게 목표치를 높인 것인데요. 올해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부가 불황형 상품인 복권 판매를 확대하면서 ‘한탕주의’를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씁쓸한 비판도 나오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