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다음 달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고금리 공포에 가계 소비 줄고, 기업ㆍ자영업자 '덜덜'
멈춘 줄 알았던 고금리의 공습이 다시 시작됐다.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인상하는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발언에 글로벌 시장이 일제히 요동쳤다.
우리나라 주식과 환율 시장도 출렁였다. 지난달 인상 행진을 멈춘 국내 기준금리에 대한 인상 압박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무려 200조 원이 넘는 돈을 빌려 쓴 기업과 자영업자의 이자 비용 부담도 더 커질 전망이다.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이날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최근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강력하게 나왔다”며 “이는 최종금리 수준이 과거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체 데이터가 더 빠른 긴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우린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달 열리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이 금리를 0.25%p 인상하는 ‘베이비스텝’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던 투자자들은 이제 빅스텝을 대비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당장 채권시장에서 기준금리에 민감한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12bp(1bp=0.01%p) 상승한 5.015%에 마감했다. 5% 돌파는 2007년 이후 처음이다. 반면 10년물 금리는 1bp 하락한 3.97%를 기록했다. 장단기 금리 역전 폭은 1981년 이후 42년 만에 처음으로 100bp를 돌파했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경기침체 신호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나스닥 지수가 1.25% 하락하는 등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했다.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3.58% 급락했다. 블랙록의 릭 라이더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율을 2% 가까이로 낮추기 위해 연준이 최종금리를 6%로 끌어올린 다음 장기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금융 시장에서도 주식은 고꾸라지고 환율은 치솟았다. 8일 코스피는 전장보다 31.44p(1.28%) 하락한 2431.91로 장을 끝냈다. 코스닥지수도 1.81p(0.22%) 내린 813.95로 마쳤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22원 오른 1321.4원에 마감했다. 하루 새 상승폭이 지난달 6일(23.4원) 이후 가장 컸다.
올해 1월 말까지만 해도 연준이 빠르면 9월부터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란 낙관론이 퍼졌었는데, 미국 1월 고용지표가 이례적으로 높게 나오면서 불과 한 달 만에 상황은 역전됐다. 파월 의장의 이번 매파(긴축선호)적 발언이 쐐기를 박는 모양새다.
지난달 기준 금리를 동결했던 한은의 고심도 커졌다. 한·미 기준금리 역전에 따른 원·달러 환율 상승과 외화자금 이탈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한은도 인상으로 선회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우리 국민의 이자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주요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 지난 1년 동안 우리나라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은행 등으로부터 빌린 돈은 역대 최대인 217조 원에 달한다.
고물가에 고금리가 겹치면서 소비 부문 중심의 내수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커진다. 1월까지 우리나라 소매판매는 3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 중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소비 시장은 고물가 및 고금리에 따른 가계 구매력 감소와 미래 불확실성 확대로 침체 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부동산 경기 부진 장기화가 소비를 제약하고 금융안정 리스크를 높일 것으로 관측된다. 한은 조사국은 이날 '주택시장 부진 완화 가능성 점검' 보고서를 통해 "최근 주택가격 하락폭이 축소됐지만 그간의 주택시장 부진흐름이 빠른 회복세로 전환될 가능성은 아직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주택시장 회복 지연에 따른 △실물경제 영향(소비, 투자) △금융안정관련 리스크(청년층 부채, 건설사 자금사정 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최근 부동산 거래가 조금 회복되기는 했지만, 미국 연준의 금리 6% 인상 가능성도 나온 만큼 추이를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물가가 높아진 상태에서 금리 부담까지 가중하면 향후 부동산 시장의 침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