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베이비스텝 시, 한은 내달 금리 동결 가능성 커져
향후 변동성은 지켜봐야
실리밸리은행(SVB) 파산 영향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 인상 폭을 예상보다 줄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13일 원ㆍ달러 환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 연준이 이번 달 빅스텝(한 번에 0.5% 금리 인상) 대신 베이비스텝(한 번에 0.25% 금리 인상)을 선택하고, 환율도 급등하지 않는다면 다음 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동결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SVB 사태가 글로벌 위험회피 심리를 키워 외국인 자금 이탈이나 원화 약세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오전 11시 현재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8.45원 내린 1317.10원에 거래 중이다. 환율은 7.2원 내린 1317.0원에 개장한 뒤 1310원대 초중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SVB의 갑작스러운 파산으로 글로벌 위험 회피 심리에도 불구하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장기화 가능성이 약화했다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지난 10일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이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미국 서부 스타트업의 돈줄 역할을 해오던 실리콘밸리은행을 폐쇄하며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졌다.
그러나 시장 참가자들은 위험 선호 심리 위축 속에서도 연준이 긴축 속도를 늦추고 연말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는 낙관론에 다시 한번 베팅을 거는 모양새다.
민경원 우리은행 "오늘 원ㆍ달러 환율은 글로벌 리스크 오프에도 연말 연준 금리인하 배팅 부활, 수출업체 고점 매도 등 영향에 하락을 예상한다"며 "1310원 중후반 중심 등락을 전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은행 도산으로 인한 위험선호 심리 위축은 연준이 긴축 속도를 늦추고 연말 금리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자극해 달러화 지지력을 약화시켰다"고 덧붙였다.
14일(한국시간) 발표되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도 환율과 연준 금리 결정의 중요한 포인트다. 다만 SVB사태의 파장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월 고용지표가 다행히 시장에 안도감을 줬지만, 이번 주 발표되는 2월 미국 소비자물가와 SVB 파장은 달러화의 변동성을 높일 수 있다"며 다만, 소비자물가보다 SVB 파장을 외환시장이 더욱 주목할 공산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SVB 사태로 인해 2월 소비자물가가 높게 발표되더라도 미 연준이 빅 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은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VB를 벼랑으로 몬 요인은 상당 부분 '금리'다. 연준은 지난 1년간 거의 제로(0)에 가까웠던 기준금리를 4.75%까지 빠르게 인상했다. 높은 금리에 대출이 부담스러운 스타트업이 예금을 빼내 '뱅크런'을 촉발했고, 금리가 오른 만큼 반대로 SVB의 보유 국채 가치(가격)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매각으로 유동성을 메울 수도 없었다.
따라서 연준도 오는 21∼22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이 부분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아무리 물가 안정이 시급하다지만, 금리를 계속 빠르게 높이다가 제2, 제3의 SVB 사태가 이어지면 미국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글로벌 리스크오프 심리에도 고용 및 SVB 사태에 따른 긴축 장기화 가능성이 약화됐다"며 "연준의 최종금리 수준은 기존 5.6%에서 5.1%로 하락했고, 3월 FOMC에서 50bp 인상할 확률도 현재 14.4%로 내려왔다"고 밝혔다.
미국이 베이비스텝을 밟고 환율이 하락세를 이어간다면, 한은으로서도 내달 기준금리를 다시 동결한 요인이 충분하다.
특히 SVB 사태의 확산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한은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선다면 취약한 저축은행이나 카드사(여신전문금융회사) 등에서부터 유동성 부족이 나타나 은행 등 전체 금융기관을 흔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수출·소비 감소 등 경기 둔화와 10개월 만에 4%대로 떨어진 물가 등도 동결 결정의 근거다.
다만 SVB 사태로 위험선호 회피 현상이 커지며 외국 투자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 이는 원·달러 환율에도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은에 따르면 외국인 채권 투자 자금은 지난달 6800억원 이상 빠져나가며 석달째 순유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이승헌 한은 부총재는 시장점검 회의를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은행들의 건전성이 개선돼 왔고, 미 재무부‧연준‧FDIC가 예금자 전면 보호조치를 즉각적으로 시행한 점등을 고려할 때, 현재로서는 SVB, 시그니처은행 폐쇄 등이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이 부총재는 "다만 이번 사태가 투자심리에 미치는 영향, 14일 미 CPI(소비자물가지수) 발표 결과 등에 따라서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한은은 이번 사태가 국내 금리‧주가‧환율 등 가격변수와 자본유출입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적절한 시장안정화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