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섭 한국원자력학회 사무총장, 과학칼럼니스트
대형 지진은 두 대륙판이 부딪치는 경계에서 일어난다. 튀르키예 지진은 아나톨리아판과 아라비아판의 경계에서 일어났고, 동일본 지진은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이 충돌하는 경계에서 일어났다. 경계에서 떨어진 내륙에서는 대형 지진보다 중형 지진이 일어나는데, 2016년 규모 5.8의 경주 지진과 2017년 규모 5.5의 포항 지진이 대표적이다.
일본열도에서 일어난 대형 지진의 영향을 받아 한반도에서 지진이 일어난다면 규모 6 정도를 넘을 가능성이 적다. 경계에서 멀어질수록 대륙판에 누적되는 응력은 분산되어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응력은 지진 규모를 결정하는 동시에 지진으로 인한 대륙의 순간 이동과도 관련이 깊다. 2011년 동일본 지진이 발생하자 일본은 240㎝, 동해안은 5㎝, 서해안은 2㎝ 동쪽으로 순간 이동했다.
유라시아·태평양판 충돌대서 멀어져
수억 년 전 고생대나 중생대에 이야기는 달랐다. 과거 한반도에는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빈번했다. 한반도의 산맥들이 그 증거이다. 한반도 산맥의 생성 과정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지만 대륙 이동설로 대략 개념을 잡을 수는 있다. 한반도의 지질은 선캄브리아기에서 신생대까지 탄생 시기가 제각각이다. 평북개마지괴, 경기지괴, 영남지괴는 선캄브리아기에 생성되어 섬처럼 따로 떨어져 북쪽으로 이동했다. 히말라야산맥을 형성하는 인도대륙이 북쪽으로 이동했듯이.
중생대 초기에 경기지괴가 평북개마지괴와 추돌하며 산둥반도 방향의 산맥이 만들어졌고 그사이에 평양습곡대가 나타났다. 중생대 후반에는 영남지괴가 경기지괴와 추돌하여 중국 방향의 산맥이 만들어졌고 그사이에 옥천습곡대가 나타났다. 두 차례의 추돌을 통해 한반도는 남으로 길어졌다.
동으로 눈을 돌리면, 신생대에 태평양판이 유라시아판을 파고들면서 태백산맥이 융기되어 동쪽이 가파른 경동지형이 만들어졌다. 유리시아판은 태평양판의 저항을 받으면서도 동쪽으로 뻗었고 대륙이 얇아지면서 동해 바다가 생겼다. 유라시아의 동쪽 신장은 최근 동일본 지진에서도 관측되었다.
추돌과 융기는 지진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단층을 만들었다. 한반도 대부분 단층은 이때 만들어졌고 이후 풍화된 토양이 그 위를 덮었다. 단층은 앞으로 일어날 지진의 전조라기보다는 활발했던 지진의 흔적이다. 단층은 이제 큰 지진을 막는 완충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대륙은 응력을 차곡차곡 누적하다 단층을 만나면 응력을 지진으로 해소한다. 응력이 수시로 해소되니 큰 지진이 일어날 겨를이 없다.
지괴의 추돌과 대륙의 신장을 통해 한반도는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의 충돌대에서 멀어졌다. 이제 일본열도가 충돌대 위에 놓여 있다. 지구 내부의 맨틀 운동이 바뀌면 한반도가 다시 충돌대에 가까이 갈 수 있겠지만 이는 몇 억 년의 시간이 걸린다. 몇 만 년 안에 한국에서 큰 지진이 발생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한반도에 대형 지진이 적은 또 하나의 이유는 풍화된 토양 탓일 수 있다. 한반도의 지반암은 선캄브리아 암석이므로 변성되었다. 변성되거나 풍화된 토양은 높은 응력을 견디지 못하고 적정 단계에서 응력이 해소될 수밖에 없다.
과학으로 미신의 영역 떨쳐 버려야
불확실한 영역에서는 미신이 성행한다. 고대에 별과 해와 달의 운동이 불확실하여 점성술이 유행했다. 케플러 천문학이 나타나자 점성술은 힘을 잃었다. 화학은 연금술의 한계를 밝혀 마법사를 쫓아냈다. 현대 과학에서 남은 불확실의 영역은 지진 예측이다.
‘한국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뻔한 이야기는 주술을 부르는 노래이다. 지구 내부에 끓는 맨틀은 대륙을 이동시키므로 안전지대가 있을 수 없지만, 과학으로 미신의 유혹을 떨쳐 버려야 한다. 규모 7 정도의 내진설계를 준수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정밀한 지질조사와 응력의 측정은 이 글의 부족한 과학적 해석을 메워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