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끝까지 도운 조 변호사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1986년, 서울대를 중퇴한 권인숙은 신분을 위조해 공장에 취업했다가 경찰에게 발각돼 끌려갔다. 그는 공문서위조 사실을 인정했으나, 경찰은 인천5.3민주항쟁 주동자들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그를 폭행하며 수사를 이어갔다. 권인숙은 “나를 통해 핵심 인물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권인숙은 형사들의 지시로 이동한 곳에서 문귀동 경장을 만났다. 그는 문귀동에 대해 “아주 무서운 인상이었고, 얼굴도 시커멓고 눈도 무서웠다. 앞으로 뭔가 일어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압도했다”고 전했다. 문귀동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권인숙을 상대로 성폭력을 고문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수치심과 모멸감이 가득했지만, 권인숙은 자신이 겪은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사람이 조 변호사였다.
서울대 전체 수석, 공부보다 시위를 더 열심히 했다면서도 사법고시를 1년 만에 합격하는 등 ‘천재 중 천재’였던 조 변호사는 소시민의 변론을 자청했다. 공익을 위한 사건이라 판단되면 수임료는 받지 않아 ‘빵원짜리 변호사’로 불리기도 했다.
권인숙은 조 변호사와 함께 문귀동 및 관련 경찰들을 수사해달라는 고발장을 제출했다. 혐의를 부인하던 이들은 결국 꼬리를 밟혔고, 한 명의 자백으로 권인숙의 진술이 진실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검찰은 당시 정부 지시에 따라 주범인 문귀동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고, 언론도 정권의 보도지침에 따라 진실 앞에서 침묵했다. 조 변호사는 10만 부의 고발장을 제작해 전국에 배포했고, 사회적 공분을 자아냈다.
이후 권인숙은 공문서 위조죄로 법정에 섰고, 조 변호사는 밤새워 준비한 최후 변론을 시작했다. 권인숙이 어떤 사람인지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 도입부에, 장성규는 “어떤 글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인숙 씨를 짓밟았지만 어떤 글은 인숙 씨를 살려내려고 애쓰고 있다”고 감탄했다. 권인숙도 “조 변호사님이 변론서를 읽으며 우셨다. 그 분께는 온 마음을 다 바쳤던 사건이었다. 너무 잘 써주셨다. 나에 대한 책임감, 애정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많은 이들을 울린 조 변호사의 변론에도, 권인숙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그러나 조 변호사는 성고문 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한 수사를 집요하게 요청했고, 결국 1988년 4월 문귀동이 구속됐다.
한 달 후 열린 성고문 사건의 첫 공판에서 문귀동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적은 형량에도 권인숙은 유죄가 인정된 것에 기뻐했다.
방송 말미에는 조 변호사가 아들에게 남긴 엽서가 공개됐다.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사진이 박힌 엽서에는 ‘작으면서도 아름답고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건물이 얼마든지 있듯이 인생도 그런 것’이라며 ‘건강하게 성실하게 즐겁게 하루하루 기쁨을 느끼고 또 남에게도 기쁨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는 문구가 적혀 보는 이들을 먹먹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