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0일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가 공개되자, 누누티비 검색량은 한 달 전에 비해 20배가 넘게 증가했다고 합니다. ‘더 글로리’를 보기 위해 넷플릭스 대신 불법 사이트로 이용자들이 몰렸다는 얘기인데요. 해당 사이트의 최근 월간 방문자 수는 1000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는 월간활성화이용자 수(MAU) 400만 명대를 기록하고 있는 OTT 플랫폼 웨이브, 티빙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입니다.
해당 사이트의 영향력이 커지자 정부와 업계도 대응에 나섰습니다. 국내 미디어 업계로 구성된 ‘영상저작권보호협의체’(협의체)는 이달 9일 누누티비를 형사 고소했고, 부산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최근 누누티비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16일 밝혔는데요.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장관은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체부에서 별도 TF를 구성해 누누티비를 비롯한 불법 사이트 문제에 정교하게 대응하고 개선책을 찾겠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누누티비에 대한 정보를 묻는 글이 확산하는 등 관심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일종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효과’(온라인 등에 노출된 정보를 숨기거나 삭제하려고 시도하다가 오히려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어 정보가 확산하는 역효과)인 셈이죠.
일각에서는 사이트 이용자의 처벌 가능성에도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실로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누누티비는 ‘경찰’, ‘처벌’, ‘벌금’ 등 단어와 함께 언급됐습니다. 한 누리꾼은 어쩐지 긴박한 어조로 “누누티비 시청자도 처벌 대상이냐. 경찰에서 연락이 올 수도 있다고 한다”는 질문 글을 게재했는데요. 여기에 다른 누리꾼은 “시청자는 처벌 안 받는다”고 못박으며 질문자를 안심(?)시켰죠.
그런데 정말 시청자는 처벌 대상이 아닐까요? 누누티비의 문제부터 이용자들의 처벌 가능성까지 알아봤습니다.
누누티비가 불법 콘텐츠 사이트의 최초는 아닙니다. OTT 플랫폼이 등장하기 전부터 불법 콘텐츠 유통 사례는 수도 없이 많았죠. 기존 웹하드에 국한됐던 콘텐츠 불법 유통 경로는 토렌트, 모바일로 이동한 바 있는데요. 콘텐츠 시장이 발전하면서 불법 유통 업체의 ‘꼼수’도 진화했습니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사이트 주소를 수시로 바꾸는 식으로 말입니다.
누누티비도 서버를 도미니카공화국 등 남미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이트를 통해 우회 프로그램 설치 방법을 안내하고 있고, 추적이 어려운 트위터나 텔레그램 등을 통해 새 주소를 공개하면서 단속을 피합니다. 우회 영업은 과거 웹툰을 불법으로 복제·게시하던 불법 사이트 ‘밤토끼’와 닮은 모양샙니다.
누누티비는 불법 콘텐츠 유통뿐 아니라 유해성 측면에서도 비판이 나옵니다. 해당 사이트는 수익 창출을 위해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요. 사이트에는 ‘호텔 라이브 카지노’, ‘제재 없는 자유로운 베팅’ 등 광고가 노출되죠. 연동 사이트 배너도 배치돼 있는 모습입니다. 로그인 없이도 성인 콘텐츠에 자유롭게 접근 가능해, 청소년에게 미치는 유해성도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주체가 누누티비를 서비스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불법 콘텐츠 유통을 막을 방안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사이트는 폐쇄되더라도 언제든 새롭게 만들 수 있죠. 특히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우회해 들어올 때, 이를 근본적으로 제재하기 어렵습니다. 방송사, OTT 플랫폼, 영화 제작·배급사 등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죠.
한국 드라마, 영화, 웹툰 등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불법 유통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대응을 못 하는 게 현 상황인데요. 업계는 결국 칼을 빼 들었습니다. 협의체를 구성하면서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이죠.
MBC, KBS, CJ ENM, JTBC 등 방송사와 한국영화영상저작권협의회, 콘텐츠 제작사 SLL, OTT 플랫폼사 콘텐츠 웨이브, 티빙과 불법복제 대응 조직인 ACE(Alliance for Creativity and Entertainment)는 8일 손을 잡고 협의체를 발족했는데요. ACE는 넷플릭스 등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불법복제 대응 조직입니다.
누누티비 같은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는 특히 넷플릭스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콘텐츠 경쟁을 이어가고 있는 국내 OTT 플랫폼에 치명적입니다. 무료이기 때문에 OTT 구독 해지로 이어질 수도 있죠. 협의체가 첫 대응 상대로 누누티비를 꼽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협의체에 따르면 누누티비로 인한 국내 콘텐츠 업계의 피해 규모는 조회 수와 주문형 비디오(VOD) 구매 가격만 고려해도 무려 4조9000억 원에 이릅니다. 여기에 콘텐츠 부가 판권과 수출 등을 고려하면 피해액은 훨씬 늘어나죠.
그간 업체들이 개별적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누누티비를 신고해 오긴 했지만, 업계 차원에서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누누티비 이용자가 경찰 전화를 받았다는 글이 올라와 화제를 빚기도 했습니다. 한 누리꾼은 “지인과 누누티비로 ‘더 글로리’를 봤다. 이후 단체 채팅방에서 얘기하다가 링크를 전송했는데 며칠 뒤 경찰에게 전화가 왔다”며 “누누티비 수사 시작했다고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부산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관계자는 22일 본지에 “누누티비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인 것은 맞다. 수사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며 온라인 커뮤니티 글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다”고 전했습니다.
글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처벌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용자들의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법조계에서도 이용자 처벌 가능성에 대한 의견은 각기 다른 모습인데요. 이용자도 불법 행위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어려워 보입니다. 먼저 불법 콘텐츠 사이트 이용은 저작권법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본 파일이 불법 복제물임을 알면서도 링크 사이트에 접속해 이를 시청하는 경우(스트리밍) 저작권법 제16조 복제권을 침해할 수 있는데요. ‘복제’는 기술 발전에 따라 실시간 스트리밍까지 그 범위를 넓게 보고 있습니다. 콘텐츠를 보는 시점에 이용자 기기로 데이터가 다운로드되기 때문에 ‘일시적 복제’에 해당한다는 거죠.
특히 해당 누리꾼은 단순 시청뿐 아니라 단체 채팅방에 사이트 링크를 공유했다고 하는데요. 불법인 걸 알면서 불법 사이트의 링크를 공유한다면 방조의 고의를 물을 수도 있다는 의견입니다.
이종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같은 날 본지에 “불법 성적 촬영물, 아동 및 청소년 성착취물에 해당하는 영상이 아니라면 현행법상 명확한 처벌 조항이 없어 시청자 개개인에 대한 처벌은 어려울 것”이라며 “법리나 판례를 적극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특히 (불법 유통 콘텐츠를) 저장하거나 이를 또 배포한다면 저작권법 등에 저촉될 수 있다”고 당부했습니다.
앞서 국내 최대 불법 웹툰 공유 사이트였던 밤토끼는 결국 운영자 일당이 2018년 부산경찰청에 검거되며, 사이트가 폐쇄된 바 있습니다.
누누티비는 서버를 다시 제3국으로 이동하면 추적이 어려워 운영자 검거 자체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누누티비를 포함한 모든 불법 콘텐츠 유통 사례에 대해서 대응하기도 현행법상 어려운 실정이죠. 불법 콘텐츠 유통을 제한할 실효성 있는 법적·제도적 보완과 함께 이용자들의 경각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