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위생상 위해 우려 없어 가능” vs “학문적 원리, 접근법 달라 안 돼”
대법원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합법이라고 판결을 내린 가운데, 의사단체들은 ‘명백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의사들의 뇌파계·초음파 등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문제없을까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2월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한의사에게 의료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앞선 판결에서 초음파 검사는 현대 의학적 전문지식이 필요해 한의사의 사용이 불법이라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진단 보조의 목적이라면 한의사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뇌파계에 대해선 2016년 8월 서울고등법원이 한의사가 뇌파계를 치매, 파킨슨병의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의료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돼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두 사건에 대해 한의협은 △현대의료기기 사용 금지 규정 없음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해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치 않다 등으로 해석했습니다.
한의협은 “사법부의 큰 흐름이 바뀌어 가고 있음에도, 의사단체는 아직도 자신들만의 우물 안에 갇혀서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을 맹목적으로 가로막으며 한의약 폄훼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현대 진단기기는 한의학의 과학화와 현대화에 필요한 도구이자 문명의 이기다. 이를 적극 활용해 최상의 치료법을 찾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의료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책무”라고 비판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를 비롯한 의사 단체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의협은 “뇌파계가 전기생리학적 변화를 바탕으로 뇌의 전기적인 활동신호를 기록하는 장치로서 한의학적 지식을 기초로 한 행위로 볼 수 없으므로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을 불법임을 명확히 밝힌다”고 주장했습니다. 뇌파계는 독일의 생리학자이며 신경정신과 의사인 한스베르거가 뇌의 전기활동을 기록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식의 하나인 뇌전도(EEG) 기법을 1924년 발명한 것으로 이후 수많은 의사들의 연구 노력으로 지식이 축적돼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쓰이는 만큼, 현대 의학에서 활용하는 게 맞다는 입장입니다.
지난해 말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이 합법이라는 판결이 나왔을 때 의협을 비롯해 대한병원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7개 단체는 의료계의 극심한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성명을 통해 “대법원의 비상식적인 판결은 의료용 초음파 진단기기라는 영역의 특수성을 간과하고, 의료인 면허제도의 존재 의미를 부정한 처사”라며 “의학과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가 다르고 질병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에 있어서 접근법 또한 전혀 다른 분야다. 의과의 전면영익인 초음파 진단을 확인도, 증명도 되지 않는 방식의 보조적 사용도 괜찮다고 폄훼한 것이다. 결코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의사단체는 현행 의료법에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적시돼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 범위가 명확하게 구분돼 있고, 뇌파계 등 현대의료기기는 한의사 면허 범위 외의 의료행위이므로, 명백한 불법 의료행위라고 규정합니다. 이로 인해 법원 판결 이후 한의사와 의사 간 직역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편,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한의사들의 초음파 진단기기 등 현대의료기기 사용 활성화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내달 6일 파기환송심의 결과를 지켜봐야 하고, 동일한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건강보험 적용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환자에게 검사료를 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건강보험에 등재되기 위해선 안전성, 경제성, 급여 적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최종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한의계는 ‘초음파 등 현대 진단기기‘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화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의협은 23일 ’초음파진단기기 허용 대법원 판결의 후속조치와 한의 보장성 확대방안 마련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은용 대한한의학회 부회장은 “2023년 기준 한의과의 급여행위는 408개임에 비해 양방은 6435개로 무려 16배 가까이 차이가 나고, 한의과의 건강보험 점유율은 불과 3.3%에 불과하다”며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의료 선택권을 넓이기 위해서는 한의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돼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어 “한의 물리요법 급여 확대와 혈액·소변검사 급여 적용, 추나요법 급여기준 개선 및 확대 등을 통한 한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절실하다”며 “현대 진단기기 사용 급여화와 건강보험 시범사업 참여 확대 등으로 차별 없는 공정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K-Medicine 구현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명심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