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정부는 23일(현지시간) 권 대표로 의심되는 인물이 자국의 수도 포드고리차에서 검거돼 신원 확인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는데요. 한국 경찰은 몬테네그로 당국에 권 씨의 지문 자료를 보내 그가 맞다는 사실을 24일 최종 확인받았습니다.
권 씨의 신병이 확보된 건 한국 검찰이 지난해 9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권 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추적해온 지 약 6개월 만입니다. 한미 사법 당국은 그간 테라·루나 폭락 사태와 관련된 인물들을 일제히 조사하는 등 수사망을 좁혀온 터라 이번 신병 확보를 계기로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권 대표의 신속한 송환을 위해 범죄인 인도 절차를 밟는다는 방침이지만, 뜻밖의 난관을 겪게 됐습니다. 미국과 싱가포르 당국도 권 대표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 대표가 현지에서 소송으로 시간을 끈다면 국내 법정에 서기까진 수년이 걸릴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아예 세우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있죠.
그런데 일부 국내 피해자들은 ‘미국에서 재판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라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권 대표의 신병 확보를 두고 벌이는 국가 간 쟁탈전부터 일부 피해자들이 ‘미국 내 재판’을 원하는 이유까지 살펴봤습니다.
앞서 권 대표는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와 함께 테라·루나 발행사인 테라폼랩스를 공동 창업했습니다. 권 대표는 테라와 루나가 함께 폭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도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지속해서 발행하는 등 허위 정보를 제공한 혐의를 받습니다.
권 대표는 테라·루나 사태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인 지난해 4월 한국을 떠났습니다. 당초 싱가포르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싱가포르 경찰은 지난해 9월 “권 대표가 현재 자국 내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권 대표의 신병을 확보하고 인계받기 위해 지난해 9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수배를 요청했는데요. 인터폴 적색수배 대상에 오른 권 대표는 지난해 11월 여권이 무효화됐고, 위조 여권을 사용하다 결국 덜미를 잡혔습니다. 측근인 한 모 씨와 몬테네스로에서 체포된 권 대표는 대한민국 여권이 아닌 코스타리카 여권을 소지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의 수하물에선 벨기에 여권도 발견됐죠.
법무부가 법률과 국제협약에 따라 권 대표의 송환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미국, 싱가포르 등도 수사에 착수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습니다. 디지털 자산인 가상화폐 특성상 피해자가 전 세계에 걸쳐 있다 보니, 권 대표의 송환을 놓고 국가들이 경쟁을 벌이게 된 모양샙니다.
미국 뉴욕 남부연방지방검찰청은 권 대표 검거 직후 그를 증권 사기·시세 조작 등 8개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미국도 권 대표를 미국 법정에 세우기 위해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싱가포르 경찰도 권 대표가 800억 원대 가상화폐 사기를 저질렀다고 보고 지난달부터 수사 중입니다. 또 권 대표는 몬테네그로 현지에서도 위조문서 소지 혐의 재판, 범죄인 인도 심리 등 총 2가지 사건에 휘말린 상태입니다.
몬테네그로 당국이 위조 여권 등 관할권에서 벌어진 형사 사건에 대해 자체적으로 재판을 진행할 방침이다. 권 대표 측이 이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한다면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또 국제법에 따르면 피의자를 체포한 나라, 즉 몬테네그로가 송환국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인도 결정에 대해 권 대표 측이 불복해 소송으로 맞설 가능성도 있죠. 당장 우리 정부가 권 대표의 신병을 확보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피해자들의 최대 관심사도 ‘권 대표가 어느 나라에서 재판을 받게 되느냐’입니다. 현지 법원이 당사자의 의견을 고려한다면 권 대표는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의 송환을 희망할 거라는 관측도 나오는데요. 한국에서 경제사범의 최고 형량은 약 40년입니다. 반면 미국은 훨씬 강도가 세죠. 약 72조 원어치 피해가 발생했던 다단계 금융 사기 ‘폰지’ 사건의 주범 버나드 메이도프의 경우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국내 피해자들이 권 대표의 미국 인도를 희망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회원 수 2700여 명 규모의 국내 루나 테라 코인 공식 피해자 커뮤니티에서는 26일 권 대표의 국내 송환에 대한 무기명 투표를 진행했는데요. 투표 게시물을 올린 카페 관리자는 “권도형과 사기 공범들이 국내에서 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면 추적을 피해 은닉·세탁한 자금으로 해외로 출국하여 떵떵거리면서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투표 참여자 94명 중 71.3%(67표)가 권 대표에 대해 ‘미국으로 인도돼 처벌받아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한국으로 인도돼 처벌받아야 한다’에 투표한 사람은 16%(15표)에 그쳤죠. 투표에 참여한 인원 자체가 그렇게 많진 않지만, 우리나라 수사당국의 의지와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이 이 같은 결과의 근간으로 해석됩니다. 댓글에서도 한국에서의 낮은 형량을 우려하는 이들의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권 대표의 송환에는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운영자인 손정우 사례와 유사점도 있습니다.
앞서 미국 사법당국은 2020년 손정우에 대해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바 있는데요. 손정우의 아버지는 그해 5월 아들을 범죄 수익 은닉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자신의 개인 정보로 가상화폐 계좌를 개설해 범죄수익금을 거래·은닉했고, 모친(손정우의 조모) 병원비를 범죄수익으로 지급해 모친 명예를 훼손했다며 자기 아들을 고소한 겁니다. 형법상 친족 사이에는 범인 은닉 또는 도피 방조를 해도 처벌을 하지 않게 돼 있어 아버지가 아들을 고소했다는 점은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요. 이 같은 행위는 미국으로의 범죄인 인도 심사를 앞둔 아들을 한국에서 처벌받게 하려는 아버지의 ‘고육책’이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습니다.
만약 손정우가 미국 법정에 섰다면 징역 50년 이상의 중형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손정우 아버지는 “천성이 악한 아이는 아니다”라며 아들의 미국 송환을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도 올려 공분을 샀죠. 이후 한국에서 재판을 받은 손정우는 징역 2년을 받는 데 그쳤습니다. 손정우 사례처럼 권 대표 측도 비교적 낮은 형량을 염두에 두고 국내에서의 재판을 원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권 대표도 몬테네그로 현지에서 받을 형사 절차를 임의로 만들어버린다면, 국내 송환에는 더 긴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권 대표의 송환을 둔 국가 간 쟁탈전은 가상재산의 ‘증권성’을 바라보는 당국의 입장을 재조명하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가상재산을 일종의 투기상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본시장법에 따른 제재를 가한 적이 없고, 가상자산이 지닌 증권성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죠.
앞서 국내 법원은 지난해 11월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바 있습니다. 테라·루나가 증권거래법 적용 대상인 ‘증권’인지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였죠. 가상자산 관련 법안도 국회에서 수년간 계류 중입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가 전방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를 사기 혐의로 제소한 바 있습니다. SEC는 투자자들이 공동의 사업체에 투자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대로 투자한 사실을 근거로 테라·루나를 무등록증권으로 판단했죠. SEC에 이어 미국 뉴욕 검찰도 증권 사기 등 총 8개 혐의로 권 대표를 기소하며 테라·루나의 증권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를 판단하는 사례로 남게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합니다.
한편 검찰은 권 대표 관련 수사 자료를 계속 현지로 보내면서 송환 의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27일 법무부와 검찰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은 24일 권 대표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를 요구하는 요청서를 몬테네그로 정부 측에 보냈습니다. 권 대표의 과거 체포 영장과 적색 수배 근거 등 범죄 혐의가 담긴 문건을 의견서 형식으로 다수 전달했죠. 경찰청도 “송환 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천재 사업가에서 ‘국제 사기범’으로 전락한 권 대표. 그를 둘러싼 한국·미국·싱가포르·몬테네그로 등 4개국의 수사 방향과 과정에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