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쿠테타 멈출 때까지 시위 지속할 것”
‘민주주의 등대’ 미국, 영향력 한계 드러나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대화를 통해 내전을 피할 기회가 있을 때 타임아웃을 갖기로 했다”며 “사법 정비 입법에 관한 의회 결정을 다음 회기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네타냐후 총리 주도의 우파 연정은 지난해 말 재집권에 성공한 후 사법부 권한을 축소하는 입법을 추진해왔다. 이들이 밀어붙인 개혁안에는 의회의 입법 과정에서 대법원의 견제 역할을 약화하고, 법관 임명 시 정부 관여를 확대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야당과 법조계, 시민들은 “삼권 분립을 위태롭게 한다”며 반발했다. 대규모 항의 시위와 파업으로 사회와 경제 혼란이 심화했다. 공직 사회 내부에서도 반발 움직임이 커졌다. 극심한 분열로 연정이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
이에 이스라엘 지도부는 5월 초까지 입법을 연기하겠다고 한 발짝 물러났다.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야권과 합의점을 찾겠다고 했다. 하지만 핵심 법안에 대한 견해차가 워낙 커 협상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기한 내에 타협에 이르지 못했을 때다. 정치 분석가들은 이 경우 갈등이 재점화하거나 되레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루살렘의 싱크 탱크 ‘이스라엘민주연구소’의 요하난 플레스너 소장은 “평화협정이라기보다는 휴전에 가깝다”며 “이 위기가 끝났다고 말하긴 너무 이르다”고 진단했다.
입법 연기로는 반발 여론을 잠재울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스라엘군 정보국장 출신의 타미르 하이만 이스라엘국가안보연구소(INSS) 상무이사는 “투표를 연기하는 것만으로는 거리의 분노를 끝낼 수 없다”며 “네타냐후가 사법 개혁 추진에 있어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시위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시위대 일부는 사법개혁안을 완전히 철회하기 전까지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사법 개혁 반대 시위를 조직한 단체인 독재반대우산운동은 “사법 쿠데타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태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력 한계를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질주를 막아선 것이 미국 정부가 아닌 이스라엘 시민들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신을 스스로 ‘민주주의의 등대’라고 표현해왔지만, 중동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조차 제어하지 못하면서 체면을 구기게 됐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해 이례적으로 직접적인 우려를 표했으나, 네타냐후 총리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며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