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제때 갚지 못하는 가계와 기업이 늘고 있다. 금리 상승에 따른 효과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영되고 있는 영향으로 보인다.
2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2월 신규 연체율 평균은 0.09%로 집계됐다. 1월 0.08%보다 0.01%포인트(p) 높아졌다.
신규 연체율은 당월 신규 연체 발생액을 전월 말 기준 대출잔액으로 나눈 것으로, 새로운 부실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5대 은행의 신규 연체율 평균은 지난해 1월 0.04%에서 변동이 없다가 8월 0.05%로 오른 뒤 지난해 말 0.07%까지 올랐다. 올해 1월에는 0.08%, 2월에는 0.09%로 오름세다.
연체율은 가계와 기업 모두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다. 5대 은행의 2월 가계 신규 연체율 평균은 0.07%, 기업 신규 연체율 평균은 0.10%로 집계됐다.
가계 신규 연체율 평균은 8월 0.05%로 오른 뒤 지난해 말 0.06%, 올해 1~2월에는 0.07%로 올랐다. 기업 신규 연체율 평균도 지난해 1월에서 8월까지 0.04~0.05% 수준이다가 1~2월에 0.10%까지 올랐다.
여신건전성 지표도 악화했다. 5대 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 평균은 2월 0.27%로, 1월 0.24%보다 0.03%p 높아졌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인 채권 비중을 나타내는 지표로, 높을수록 부실자산이 늘어나 은행의 자산건전성이 악화됐음을 뜻한다.
5대 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 평균은 지난해 상반기 0.22~0.25% 수준을 오르내리다가 9월 0.21%까지 내렸지만, 2월에는 다시 0.27%까지 상승했다.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비율이 오른 이유로는 ‘금리 상승’이 꼽힌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대출받은 차주가 많아졌는데, 금리의 급격한 상승으로 대출이자 부담이 늘자 가계·개인사업자들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신용 잔액은 2019년 말 1600조6000억 원에서 지난해 말 1867조 원으로, 3년 새 266조4000억 원(16.64%) 늘었다. 기업 신용 잔액 역시 같은 기간 1948조9000억 원에서 2590조 원으로 641조1000억 원(32.9%) 증가했다.
코로나19로 대출받은 차주가 늘어난 상황에서, 기준금리 상승에 따라 이자 부담이 늘었다. 한은이 2021년 8월부터 기준금리를 10차례에 걸쳐 인상하면서 기준금리는 0.50%에서 3.50%까지 높아졌다.
예금은행 가계대출(가중평균·신규취급액 기준) 금리는 2월 5.22%로, 2021년 말 3.66%보다 1.56%p 상승했다. 기업대출 금리 역시 2021년 말 3.14%에서 지난 2월 5.36%로 2.22%p 높아졌다.
연체율은 계속 오를 수 있다.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 조치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9월 대출만기 연장은 최장 3년, 이자 상환유예 조치는 최장 1년 연장한다고 밝히면서 금융사와 차주간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기간을 결정하도록 했다.
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 등으로 인해 부실채권은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금리 인상의 누적 효과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비율이 앞으로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한은이 2월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했지만, 금리 인상에 따른 경제 둔화는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한은은 이달 초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통해 “기준금리 인상의 성장, 물가 둔화의 영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점차 나타나고 있다”며 “정책 시차를 고려할 실물경제 둔화의 영향은 올해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