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이 남긴 과제

입력 2023-04-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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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일 목원대 금융경제학과 교수

지난 40년간 시스코, 에어비앤비, 우버 등 수많은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지원해왔던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최근 퍼스트시티즌스에 인수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뱅크런 사태로 파산절차에 들어간 지 17일 만이다. 기술프로젝트는 주로 벤처캐피털 등의 투자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인 데 반해 SVB는 이들에 대한 예금과 대출을 주요 비즈니스 모델로 하면서도 높은 수익과 안정성을 보여줘 벤처은행의 새로운 유형으로 주목받아왔기에 그 파산 소식의 충격은 상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고금리와 불확실성의 시대에 미국 금융부문의 취약성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어 시장참여자들을 아연실색하게 하였다. 이 은행의 파산이 우리에게 주는 과제는 무엇일까. 몇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거시경제와 금융산업 부문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미 연준의 대응이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정책적 선택으로 귀결되는 상황에서 국채를 비롯한 자산을 운용하는 금융기관들이 SVB처럼 전략적 실수를 할 경우 모바일뱅킹의 환경 속에서 뱅크런에 굉장히 취약해질 수 있다. 이는 제한된 유동성과 시장의 불안정성과 연결되면 더욱 가중된다. 무엇보다 고민스러운 부분은 이를 대비하기 위해 금융기관들이 자금운용과 대출 등에서 보수적인 행태를 보일 경우 이는 다시 중소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사정을 어렵게 해 소비, 투자 등의 감소로 이어지고 경기침체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여 년간의 양적 완화와 인플레이션, 그리고 그 대응의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부작용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한국은행과 정책당국이 이를 잘 관리하여 경제를 연착륙시켜야 하는 것이 이 은행의 파산이 주는 첫 번째 과제이다.

두 번째로 지역 중소은행의 역할과 금융시장의 안정성 문제이다. 주지하다시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거대은행에 대한 규제는 주목받아왔지만, 지역 중소은행에 대한 규제는 상대적으로 소홀이 취급받거나 완화되어 왔다. 이번에 SVB의 파산과 연이은 중소은행들의 어려움은 이와 관련되어 있다. 국가가 예금지급을 100% 보장해주는 탄탄한 거대 은행 몇 개만 남기면 금융 안정성은 확보할 수 있지 않으냐는 주장도 있을 수 있으나, 미국 내 대출에서 소규모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이른다는 사실은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특히 상대적으로 낙후되거나 소외받은 지역 및 계층의 금융에 대해 지역재투자법 등 여러 방면에서 정책당국이 노력해왔음을 고려한다면 지역 중소은행은 오히려 대형은행이 대응하지 못하는 영역에 더욱 촘촘히 배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금융 생태계의 다양성이고 시스템의 지속성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다양성과 안정성 사이에서 규제를 어떻게 균형 있게 할 것인가는 어려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독과점 등 은행산업을 비롯한 금융부문의 개혁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경제에도 여러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

세 번째 영역은 한국의 새로운 벤처금융 모델과 관련된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여러 방식으로 소위 테크기업을 육성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고 이는 주로 공적개입의 양상을 보여왔다. 프랑스의 공공투자은행(BPI France), 영국의 영국투자은행(British Business Bank) 등이 대표적 사례이고 한국의 모태펀드 등도 유사한 경우이다. 하지만 여전히 벤처기업에 대한 적절한 금융환경 제공은 어려운 도전이고 개혁의 대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새로운 활로로서 한국식 벤처은행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민간이 중심이 되는, 그리고 벤처기업, 벤처캐피털 등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온 SVB는 그 우수한 성과로 인해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SVB의 몰락은 그간 논의의 성과를 무색하게 하였다. 물론 거시경제환경 등의 영향으로 그 모델의 유효성 자체가 의심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으나 한국적 상황에 맞는 모델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실리콘밸리는 미국 경제의 혁신성을 상징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태동한 빅테크 기업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을 무대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의 기반이 된 금융기관의 파산은 복잡한 거시경제 환경과 맞물려 우리에게 쉽지 않은 과제들을 부여하고 있다. 정책당국을 비롯해 각 주체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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