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아파트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지만, 정작 시장 내 큰손 격인 법인은 손절매에 나서고 있다. 집값 내림세가 이어지고, 법인 보유세 부담 완화가 불발 됐을 뿐 아니라 경기 둔화로 이자 등 보유 부담이 늘자 일찌감치 팔아치우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국 집값 내림세가 이어지고, 법인 자격으로 아파트를 보유하는 이점이 부족한 만큼 당분간 법인의 아파트 매도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11일 본지가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 2월 전국 기준으로 법인이 개인에게 아파트를 매도한 건수는 총 211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1월(1263건) 대비 67.6% 증가한 수준이다. 반면 개인이 법인에 매도한 건수는 239건으로 전월(190건) 대비 25.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서울만 놓고 보면 법인의 아파트 매도세는 더 뚜렷하다. 2월 서울 기준으로 법인이 개인에게 아파트를 판 경우는 총 53건으로 전월(25건) 대비 112% 급증했다. 반면 법인이 개인으로부터 사들인 경우는 6건으로 1월(14건)의 절반 이하를 기록했다. 2월 전국 매매량은 3만1337건, 서울은 2286건으로 1월 대비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거래량은 전국과 서울에서 모두 급증했지만, 법인은 매수 대신 매도를 택한 것이다.
주요 지역에서도 법인의 아파트 매도세가 잇따라 포착됐다. 개인에게 법인이 매도한 건수는 인천(1월 28건→56건)과 경기(128건→212건) 등 수도권과 충북(72건→121건), 충남(142건→210건), 대전(14건→31건) 등 충청지역에서 도드라졌다. 특히 세종은 1월 3건에서 2월 112건으로 폭증했다.
이런 법인의 아파트 손절매 현상은 무엇보다 집값 내림세가 이어지고, 금리가 오르면서 투자 목적으로 아파트를 사들인 법인의 수익률 악화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법인은 과거 개인이 총부채원리금비율(DSR) 규제 등으로 매매가 막혔을 때도 대출을 일으켜 아파트를 많이 사들였다”며 “법인 매도가 부쩍 늘어난 것은 집값 하락기가 장기화하자 시세 하락과 이자 부담 등으로 투자용으로 매입한 물건을 던지는 것으로 본다. 버티지 못하는 법인부터 순서대로 매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개인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세율 인하는 단행됐지만, 법인 종부세율은 그대로인 점도 법인의 매도세를 부채질한다는 지적이다. 올해 주택 종부세 개정안에 따르면, 개인 종부세 기본공제액은 6억 원에서 9억 원(1가구 1주택자 11억→12억 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법인은 기본공제액 ‘없음’이 유지됐다. 또 종부세 세 부담 상한도 여전히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는 2020년 당시 정부가 다주택자를 겨냥해 부동산 보유세(재산세·종부세) 부담을 늘리자 부동산 법인 신설이 늘고, 법인의 아파트 매수가 늘어난 상황과 정반대다. 윤 전문위원은 “과거보다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가 대거 풀렸고, 법인의 세제 혜택도 사라져 굳이 법인을 유지하면서 다주택을 보유하지 않고 오히려 개인 다주택자 포지션이 더 유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거시경제 악화로 부동산 법인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의 부동산 매도가 늘어난 점도 법인의 매도세에 영향을 줬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연구소장은 “부동산 전문 법인을 포함한 일반 법인도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유동성 확보에 전념하고 있다”며 “집값이 이른 시일 내 반등할 조짐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보유 부동산 때문에 세금과 이자 부담만 늘어나는 애물단지인 상황이라 법인의 매도 행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