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독특한 작품색 덕분(?)일까. 배우 이선균도 슬쩍 긴장한 모습을 내비쳤다. 10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이원석 감독의 신작 '킬링 로맨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그는 “이렇게 궁금함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자리는 처음”이라고 솔직한 마음을 전하면서도 “오픈 마인드로 영화를 보면 본격적인 신부터는 정말 재미있게 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언론에 최초 공개된 ‘킬링 로맨스’는 한국 영화계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유머와 영상 스타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개성 확실한 작품이다. 동화 읽어주기, 뮤지컬 시퀀스와 군무, 언어유희, 화장실 유머까지 다양한 장치를 두루 구사하면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코믹한 작품색을 갖춰 나간다.
발연기로 한동안 연예계를 떠나 있던 여래(이하늬)는 휴가 차 떠난 꽐라섬에서 조나단(이선균)을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수 년 간의 결혼생활 끝에 자신을 구속하고 괴롭히는 남편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자신의 오랜 팬을 자처하는 앞집 청년(공명)의 도움을 받은 여래는 남편을 해치우기 위한 작전을 수행한다. 물론, 작전 역시 하나같이 엉뚱하다. 뜨거운 불가마에서 오래 버티기, 땅콩가루 넣은 청국장으로 알러지 유발하기 등이다.
전작 '남자사용설명서'(2013)로 소위 '병맛' 유머와 개성 있는 영상 활용법을 선보인 이원석 감독의 신작이다. 남편의 가스라이팅에 몸과 마음이 너덜해진 아내의 지속적인 복수 도전을 코믹하게 영화화했다.
이날 이 감독은 “웃을 수 없는 소재, 코미디로 쓸 수 없는 소재로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병헌 감독의 ‘바람 바람 바람’(2018)을 레퍼런스로 삼았다”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걸 약간 피해가면서도 (중요한 것을) 찍을 때는 찍는다는 게 전략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하찮아 보이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맞서 싸운다는 데 중점을 뒀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면서 유쾌하고 때로 황당하기도 한 작품에 숨겨둔 진지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선균은 탈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환경운동가 남편 조나단 역을 맡아 비대한 자아, 무모한 경쟁심리, 아내를 향한 구속과 폭력적인 언행 등을 보이는 캐릭터를 매끈하게 소화한다.
이선균은 “대본을 처음 볼 때 정말 요상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구성과 특이하고 재미있는 신들의 연속이었다”면서 “오늘 큰 화면으로 작품을 처음 보니 본격적으로 드라마가 시작되는 불가마 신부터 굉장히 재미더라”고 돌이켰다. 불가마 신에는 '남자사용설명서'의 오정세가 특별 출연해 보는 맛을 더한다.
‘킬링 로맨스’의 개성을 한층 북돋는 건 능청스러운 콘셉트의 코미디 연기에 강점을 보이는 이하늬다. 가수 비의 곡 ‘레이니즘’을 편곡한 ‘여래이즘’, 마치 주문처럼 반복 활용되는 HOT의 ‘행복’이 울려 퍼지는 과감한 영화적 시도를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뒷받침한다.
이하늬는 이날 “코미디 연기는 진정성으로 해야한다”면서 “타이밍도 맞아야 하고, 센스도 있어야 하고, 엇박의 묘미도 있어야 하는 등 여러 합이 맞아야 하는 만큼 너무 어려운 게 코미디 연기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아주 간절하고 진짜 같은 마음으로 연기해야 한다”고 연기 소신을 전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상투적인 한국형 기획영화가 지속적으로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자기만의 색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킬링 로맨스’는 독보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취향을 저격당한 관객은 몇몇 장면에서 박장대소할 수 있다.
다만 통상 'B급'으로 표현되는 영화의 수요층이 크지 않은 국내 여건 상 어느 정도의 관객 호응을 끌어낼 지는 미지수다. 너무 정직한 취향이라면 관람 도중 몇 차례 정색할 수 있다.
‘킬링 로맨스’, 14일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7분.
상투적인 영화들 사이에서 꽤 반갑게 느껴지는 뚝심과 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