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내가 만약 갑자기 사라지면 어떡할 거야?”
달달함이 최고치인 연애 초기. 상대방의 기습 질문에 당황한 적 많으시죠? 과연 어떤 말이 정답인지 알 수 없습니다. 시험 범위 ‘삶 전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가로지르며 ‘원하는 답’을 뱉어야 하는데요. 대부분 엄청난 난이도에 ‘싸늘한 분위기’라는 오답 결과를 받아들이곤 하죠.
결국은 ‘상대방을 얼마나 생각하는지’에 대한 크기를 확인받고 싶은 이 질문. 최근 이 질문이 어떤 과정일지 모를 곳을 지나 기출 변형 문제로 탄생했는데요. 듣자마자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 그 질문으로 말입니다.
당황스러울 틈도 없이 ‘답’을 요구하는 초롱초롱한 시선을 마주치게 되는데요. 하고많은 것 중에 왜 하필 그 벌레일까요?
이 시작은 무려 1915년에 출간한 한 소설이었는데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유대계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가 월간지에 독일어로 출간한 소설 ‘변신’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는 잠자고 일어났더니 자신이 큰 갑충으로 변해버렸는데요. 분명 벌레가 되었지만, 가족들은 정황상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기에 이 갑충을 그레고르로 받아들이죠. 하지만 모습이 너무나 혐오스러운 데다 일을 시킬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방안에 갇혀서 먹이를 받아먹으며 비참하고 희망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벌레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의사소통도 할 수 없었던 그레고르는 주위 사람들의 갈수록 차가워지는 시선을 받게 되고,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상처가 악화돼 쓸쓸한 죽음을 맞는데요. 시체는 쓰레기처럼 내다 버렸고, 가족들은 그레고르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돼 밝은 미래를 그리게 된다는 이야기로 많은 해석을 남기는 소설이죠.
주인공의 삶과 주변인들의 관계 속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오래된 소설이 진짜 엄청난 고민으로 ‘변신’한 건데요. 이 기나긴 과정 중 ‘벌레’에 꽂힌 거죠.
흉측한 벌레가 되어버렸다. 흉측의 대명사 ‘바퀴벌레’로 향하는 생각의 길은 어렵지 않았는데요. 나는 그레고리와 같은 삶을 살게 될지, 아니면 ‘내 가족’, ‘내 연인’은 다른 선택으로 나를 감동하게 할 건지. 그 모든 마음을 담은 질문으로 탄생했습니다.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말이죠.
진짜 고릿적부터 이어온 “나 얼마만큼 사랑해?”의 현재형 버전인데요. 그간 그 질문은 정말 지독히도 무수한 변형을 거쳐 지금까지 함께해오고 있죠. 아마 이후에도 세상 마지막 때까지 살아있을 예정인데요.
끝없이 확인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그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다만 그 질문을 받게 되는 사람의 ‘당황스러움’은 어찌할 길이 없는데요. 겨우 질문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끈질기게 괴롭히죠. 그간 받아온 질문도 황당 그 자체입니다.
“내가 만약 좀비가 되면 당신은 어떡할 거야?”, “만약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거야?”, “내가 갑자기 어린아이가 되어버리면 어떡할 거야?”, “내가 내일 죽게 되는 것을 미리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 거야?”
어디서 이런 질문을 생각하는 건지. 그 창의성에 놀라울 따름인데요. “그럴 일이 없어”라고 말하며 피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만일이라는 거잖아”라며 답을 얻고자 끈질기게 따라붙죠. 겨우 답을 내뱉고, 상대방에게 되물으면 상황 정리, 미래 계획, 결과까지 ‘일대기’를 정리한 답을 내놓는 브리핑(?)에 그저 고개를 돌리게 되는데요. 이런 ‘상상력’ 가득한 사람이 나의 연인(가족)이라니… 도무지 당해낼 수가 없죠.
연령별을 넘어 MBTI별 답변도 정리됐습니다. “화형”과 “집 만들어줄게”. 극과 극 답변에 합격증을 못 받은 이들조차 폭소를 터트렸죠.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예전과 달리. 요즘은 다양한 답변들이 곳곳에 나와 있는데요.
“해충제 뿌려야지”, “밟아버릴 거야”, “주머니에 넣고 다닐게”, “같이 하늘 날면서 여행하자”, “씻겨주고, 키워줄게”, “어느 수준이야? 크기가? (심각)”
그 답변은 코믹부터 로맨스, 스릴러, 판타지 등 온갖 장르를 다 섭렵했죠.
이 ‘바퀴벌레 질문’은 부모님들에게 ‘경고 주의보’가 발령됐는데요. 아무런 생각 없이 자녀들에게 상처를 안길 수 있다는 경고였죠. “혹시 자녀가 바퀴벌레 질문을 한다면, 쉽게 대답하지 마세요”라는 경험 가득(?) 뼈 있는 조언들이 쏟아졌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답변했다는 ‘예시’들이 가득해, 학부모들 간의 무시무시한 상대평가를 이겨내야 하기 때문인데요.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 바에 ‘코믹’으로 마무리하라는 조언도 있었죠.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애쓰는 가상한 노력이 SNS 곳곳에 가득합니다. 우리 부모님의 답변만큼이나 다른 부모님들의 대답도 궁금증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인데요.
창의 질문과 방패의 답변. 그 결과가 코믹일지 로맨스일지 알 수 없지만, 그 장르를 모두 섭렵한 ‘사랑’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겠죠. 부디 다음 질문은 예상 가능한 쉬운 질문이길 의미 없이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