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권하는 사회?…솜방망이 처벌만 문제 아니다 [이슈크래커]

입력 2023-04-11 16:01수정 2023-04-1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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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존에서 인도를 덮친 만취운전자 차량에 배승아(9) 양이 숨진 대전 서구 둔산동 탄방중 앞 인도에 배 양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10일 하굣길에 추모 공간에 들른 인근 중학생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연합뉴스)
대낮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배승아 양(9)의 발인이 오늘(11일) 엄수됐습니다.

배 양은 8일 오후 2시 21분께 대전 서구 둔산동 탄방중 인근 인도를 걸어가다가 60대 남성 A 씨가 몰던 승용차에 치여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고, 끝내 사망했습니다. A 씨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만취한 상태로 차를 몰다 도로 경계석을 받고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인도로 돌진했는데요. 이 사고로 배 양과 함께 걷던 초등생 3명도 크게 다쳤습니다. 한 명은 뇌수술을 받았고, 다른 한 명은 실어증 상태로 회복 여부를 점치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다른 학생 한 명은 병원에서 퇴원했으나, 후유증 진단을 위해 재입원했습니다.

사고 당시 A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을 뛰어넘는 0.108%로 측정됐습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이날 낮 12시 30분부터 대전 중구 유천동에서 등산 관련 지인들과 모임을 갖고 소주 반 병가량을 마셨다”고 주장하면서 “연석을 들이받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후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에는 소주를 한 병 가량 마셨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배 양이 숨진 사고 현장으로부터 불과 4㎞ 떨어진 초등학교 인근 도로에서 또 음주운전이 적발됐다고 합니다. 10일 낮 음주 단속에 나선 경찰은 급히 골목으로 달아나는 차량을 포착하고 추격에 나섰는데요. 확인 결과 해당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51%, 면허 정지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날 오후 5시 6분쯤엔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에서 30대 여성이 만취한 상태로 6살 딸을 태우고 운전하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전복되는 사고를 냈습니다. 이 사고로 여성은 옆구리를 다쳤고 동승한 딸이 머리를 다쳤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치인 0.08%로 확인됐습니다.

또 9일 오후 6시 39분쯤 경기 하남 덕풍동 풍산고 인근 도로에서는 음주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 30대 남성이 몰던 차량에 음식을 배달하던 50대 오토바이 운전자가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한 피해자는 자녀 셋을 둔 가장이었습니다.

당장 8일부터 10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음주운전 사례만 4건인데요. 만취 상태로 운전한 이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어린 딸을 태우고 있던 경우도 있어 충격을 더합니다.

‘음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용 사진. (연합뉴스)
음주 운전자 처벌 수위 낮아…‘민식이법’·‘윤창호법’도 효과 미미해

음주운전 사고 피해자 측은 모두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로 생을 달리한 배 양의 삼촌 배인광 씨도 “과거 사례를 찾아보면 너무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가 (싶다)”며 음주 운전자에 대한 엄한 처벌을 호소했죠. 실로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1~12월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중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69건 중 단 1건에 불과합니다.

처벌 가능한 수위 자체가 낮은 건 아닙니다. 우리 법에 따르면 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사망 사고를 낼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징역 8년 이상의 처벌이 선고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유튜브 채널에 배 양의 사고 현장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하며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한 변호사는 “저한테는 피해자 잘못이 하나도 없는 음주 사망사고 처벌 결과를 보내주시는 분들이 여럿 계신다”며 “제가 볼 때는 평균 4년인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20년간 6000여 건의 소송을 진행한 경험에 미루어봤을 때, 음주운전 사망 사고 형량이 평균 4년으로 체감된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한 ‘민식이법’이 도입된 지 3년가량이 흘렀지만, 효과는 두드러지지 않고 있습니다. 민식이법은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김민식(당시 9세) 군이 차에 치여 숨진 후 2020년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스쿨존에서 운전자 부주의로 어린이를 사망케 할 경우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는 2017년 479건, 2018년 435건, 2019년 567건으로 집계됐습니다. 민식이법이 시행된 2020년에는 483건으로 줄었으나, 이듬해인 2021년에는 523건으로 다시 늘었습니다. 부상자 수도 2019년 이후 가장 많았죠.

음주 운전자에게 가중처벌을 하도록 한 ‘윤창호법’은 2021년 11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처벌 기준이 사실상 완화됐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낮은 양형기준, 음주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 지적

지난해 6월 대구에서는 음주운전 전과 2범의 운전자가 세 번째 음주운전으로 사망 사고를 낸 사례가 있었는데요. 이때 선고된 형량은 징역 3년에 불과했습니다.

형량은 ‘양형기준’에서 비롯됩니다. 양형기준은 법관이 마음대로 형을 선고하는 걸 막기 위해 범죄 유형별로 대법원에서 정한 권고 형량인데요. 대구 사고 당시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케 했을 경우 기본 양형기준은 징역 2~5년이었습니다. 판사는 가해자의 감형 사유 등을 고려해 양형기준 내에서 형량을 정한 걸로 보입니다.

반복되는 음주운전 사고로 공분의 목소리가 커진 탓일까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올해 2월 제122차 전체회의를 통해 스쿨존 내 음주운전 적발 시 최대 징역 4년, 음주 측정 거부 시 최대 징역 2년, 어린이 사망 시엔 최대 징역 8년을 선고하는 등의 기준안을 마련했습니다.

해당 기준안은 의견 수렴 등의 절차를 거쳐 이달 24일 최종 의결될 예정이지만, 시행되더라도 법원이 어떻게 이를 적용할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또 음주운전 사고가 무고한 피해자의 목숨과 가족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간다는 사실을 염두에 뒀을 때, 이마저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의견 역시 적지 않습니다.

음주운전을 ‘실수’로 치부하는 분위기도 음주운전 사고를 반복게 하는 요인이라는 지적입니다. 한국 사회는 유독 음주에 관대합니다. 당장 담뱃갑에 인쇄된 사진만 하더라도 각종 암이나 심혈관계·구강·비뇨기과 질환을 경고하는 사진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 술은 해당 상품을 광고하는 유명 연예인의 사진이나 첨가된 향을 강조하는 과일 등 이미지를 강조한 모습입니다.

술을 강권하는 문화는 과거보다 옅어졌으나, 술자리는 여전히 친목과 신뢰의 상징입니다. 예능 프로그램, 유튜브나 SNS 등 각종 미디어에서는 술에 관대한 한국 사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노출되기도 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주인공이 피로를 맥주로 푸는 모습이 연출되고, 웹예능에선 술을 마시며 방송을 진행하거나 게스트들이 잔뜩 취해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들이 그려집니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에 음주 사건을 일으킨 연예인들도 쉽게(?) 방송 복귀를 시도합니다. 최근에는 음주운전 전과 3범의 가수 호란이 방송 복귀를 시도했죠. 호란은 2004년과 2007년, 2016년 총 3차례 음주운전으로 적발됐고 혐의를 인정, 사과한 뒤 자숙에 돌입했습니다. 약 3년 만인 2019년 신곡을 발표하며 조심스레 ‘복귀 수’를 띄웠던 그는 같은 해 MBN 예능 프로그램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에 출연하면서 방송 복귀까지 알렸습니다.

그러나 지상파 채널에 발을 들이니, 시청자들의 비판과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특히 최근 음주운전 사망 사고가 잇따르며 안타까움을 더한 상황이라 호란의 복귀는 더욱 공분을 샀습니다. MBC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앞으로 출연자 섭외에 있어 보다 엄격한 기준을 도입하겠다”며 고개를 숙였죠.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사진제공=국민권익위원회)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등 제도 논의 오가야

해외에서의 음주운전 처벌은 어떨까요? 먼저 일본에서는 음주 운전자, 동승자는 물론이고 이들에게 술을 권한 사람까지 처벌하는 법안이 마련돼 있습니다. 동승자는 최대 5년형, 술을 권한 사람은 최대 3년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한 겁니다. 사람을 사망하게 한 음주 운전자는 최대 30년의 징역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만은 상습 음주 운전자의 신상을 공개합니다. 10년 사이 두 번 이상 음주운전이 적발될 경우 시 교통국 홈페이지에 해당 운전자의 이름, 얼굴 사진을 게재하죠.

우리나라보다 엄격한 단속 기준을 정한 나라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혈중알코올농도 0.03%부터 음주운전으로 정의, 운전을 금지하고 있는데요. 헝가리와 체코에서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 이상, 즉 술 한 방울만 마시더라도 단속 대상에 해당합니다. 노르웨이 등도 0.02% 이상부터 규제합니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교통 선진국은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음주운전 전력이 있거나, 통학버스나 화물차 등 안전운전이 각별히 요구되는 차량의 운전자에게 장치 설비를 의무화하는 방식인데요. 술을 먹고 장치에 숨을 불어넣으면 차 시동이 걸리지 않아 음주운전 재발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평입니다. 미국은 도입 후 음주운전 사망자가 19% 줄었고, 캐나다는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2009년의 이야기로, 14년째 진척이 없는 상황입니다. 19대,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이 발의됐지만 통과하지 못했고, 21대 국회에도 관련 법안이 5개나 계류 중입니다.

민식이법, 윤창호법 등 피해자들의 이름을 딴 법안은 속속들이 등장했지만,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는 참변이 반복되면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판도 큽니다. 음주 운전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비롯해 음주운전 재발을 원천적으로 막을 법안 논의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연일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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