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경제 성장 둔화에 참여국 디폴트 위험 커져
구제금융 규모 2400억 달러 달해
중국 내부서도 ‘일대일로’ 중요성 약해질 가능성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리서치 업체 로디움그룹 자료를 인용해 2020년부터 올해 3월 말까지 중국 금융기관이 제공한 ‘일대일로’ 관련 대출 중 약 785억 달러(약 102조4400억 원)가량이 재조정되거나 탕감된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직전 3년간의 재조정·탕감 규모인 170억 달러의 4배가 넘는 규모다. 그만큼 상환을 기대하기 어려운 악성 대출이 증가했다는 이야기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해 중국이 내준 대출 규모를 공식적으로 집계한 수치는 없다. 다만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학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국의 일대일로 대출은 총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국 중 파산 위기에 내몰린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가운데 주요 국가들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 개발도상국의 부채 부담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앤드메리대 산하 연구팀 ‘에이드데이터’의 브래드 파크스 책임자는 “솔직히 일대일로 참여국 부채 문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면서 “중국 은행들은 그들의 가장 큰 해외 채무국들이 인프라 프로젝트 부채를 계속 상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FT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일대일로 참여국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막기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이 한창이었던 2019~2021년에만 1040억 달러에 달했다. 이를 2000년~2021년으로 넓혀보면 그 규모는 2400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지난해 일대일로 참여국의 부채 재조정·탕감 속도는 2020~2021년에 비해 다소 둔화했다. 이와 관련해 위기에 처한 일대일로 채무국들의 서방 채권단은 중국이 부채 조정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세기의 프로젝트’라고 역점을 뒀던 10년 전과 달리 중국 내부에서도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중요성이 희미해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과의 경쟁을 위해 해외 인프라 투자보다는 자국 기술 개발 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과 자원 배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점 변화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달 ‘중국공산당과 세계 정당 고위급 대화’에서 세 가지 전략을 담은 이른바 이른바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여기에는 개도국에 대한 정치적·외교적 대안이 담긴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GDI)’와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가 포함된다. 두 개의 이니셔티브에 서명한 국가들 대부분은 일대일로 참여국이자 채무국이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약 70개국이 GDI 우호 그룹에 합류했다. 중국이 돈 대신 정치와 외교로 개도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고 FT는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