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장
물 부족 문제는 지역적이고 국지적인 문제가 아닌 세계적 핵심 이슈이다. 세계 인구와 경제활동 증가로 인한 물 부족과 수질오염, 그리고 지역·국가 간 물 수급 불균형 문제는 인류에 닥친 큰 도전이자 위기이다. 인구 증가, 산업화 및 도시화로 물 소비량은 크게 증가 추세이나 사용 가능한 물의 양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구 표면의 70% 이상은 물이다. 하지만 전체 물의 97.5%는 바닷물을 포함한 염수이고, 생명체가 사용 가능한 담수는 2.5%에 불과하다. 담수 중에서도 사람이 쉽게 사용하기 어려운 남극과 북극의 빙하, 만년설 등을 제외하면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0.39%인 600만㎦에 불과하다. 현재 약 80억 명에 달하는 사람과 수많은 동식물 등 지구상의 생명체가 겨우 이 물에 의존하며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이 개최한 ‘2023 물 콘퍼런스’에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물 부족에 고통받는 인구가 조만간 20억 명을 넘어선다는 관측이다. 또한 매년 오염된 물을 먹고 각종 질병에 걸려 목숨을 잃는 사람의 수가 2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전쟁이나 테러 등으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수치이다.
모든 생명체의 근원인 수자원이 지역적·국가적으로 공평하게 분포되어 있다면 그나마 견딜 수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물은 골고루 분포되어 있지 않다. 인구 1인당 연간 사용 가능한 담수량은 아이슬란드의 60만 톤부터 쿠웨이트의 11톤까지 국가별로 격차가 크다. 이로 인해 현재도 물을 둘러싼 국가 간 갈등과 분쟁이 빈번하다. 19세기는 영토전쟁, 20세기는 석유전쟁, 21세기는 물전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아프리카의 나일강, 중동의 요르단강과 유프라테스강, 아시아의 갠지스강과 메콩강 지역을 둘러싼 국가 간 갈등과 분쟁이 대표적이다. 지구상에 흐르는 다국적 하천과 강 주변의 국가들은 물 부족 상황에 따라 언제든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물 없이는 어느 국가도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후변화와 인구 증가로 인한 물 부족 현상의 심화는 물 전쟁과 대규모 이주사태로 이어져 세계적인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물 부족 문제는 자연스럽게 식량위기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물은 식량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물 사용량의 70%가량이 농축산물 생산에 이용된다. 그만큼 식량 생산은 물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산업이다. 식량 생산을 위해 필요한 물의 양이 부족해지면 식량 공급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고, 식량 공급 부족은 식량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국제적 식량위기를 확산시킬 것이다. 또 물 부족으로 인한 세계 식량가격 급등은 국가 간 식량자원 확보 경쟁으로 진화할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강과 하천이 마르는 가뭄과 폭염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미 몇 해 전부터 미국, 중국, 인도, 호주, 영국,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 많은 국가에서 극심한 가뭄으로 농작물이 말라 죽고, 마실 물조차 부족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국제사회의 물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노력 없이 캠페인성 구호만 외치며 시간만 보낸다면 물과 식량이 무기화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한 달 이상의 긴 봄 가뭄과 고온 현상으로 국토가 메말라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연간 평균 강수량은 1200㎜로 세계 평균치보다 1.3배 정도 높은 수준이지만, 몬순아시아 기후로 여름에 강수량이 집중되고 인구밀도가 높아 1인당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12%에 불과한 수준이다. 따라서 우리도 점차 심각해지는 물 부족으로 인해 나타날 식량위기 가능성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더 늦기 전에 물 절약의 실천과 함께 국가 물관리 체계의 재점검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