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피해 파문이 번지자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크게 두 방향이다. 하나는 공권력 대응이다. 다른 하나는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범국가적 조력 제공이다. 만시지탄의 감이 짙다. 전국 곳곳에서 이른바 빌라왕, 건축왕 사건이 불거진 것이 벌써 한참 됐다. 의문의 변사 사건도 여럿 발생했다. 인천 전세 사기 사건이 터진 것만 따져도 수개월이 지났다. 정부와 정치권이 민생의 현장을 외면한 책임이 여간 무겁지 않다.
정부 여당은 어제 당정협의회에서 조직적 전세 사기에 대해 범죄단체 조직죄를 적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공범의 재산을 추적하고 범죄 수익은 전액 몰수 보전 조치하겠다”고 했다. 전세 사기 범죄를 단순 사기죄가 아니라 범죄단체 조직 및 활동 혐의로 다스리면 보다 폭넓은 처벌이 가능해진다. 범죄수익 몰수도 가능하다.
이미 전세 사기로 입건된 공인중개사만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악성 사례도 수두룩하다. 이 분야 수사를 확대하면 그 어떤 조직망이 잡힐지 모른다. 차제에 집 없는 서민의 등을 치는 악덕 사기극이 다시는 설칠 수 없도록 철저히 뿌리를 도려내야 한다. 일벌백계가 필요하다.
전세 사기 피해 대책도 줄지어 나왔다. 정부 여당은 피해자에게 주택 경매 시 우선매수권을 인정해주고 저리 대출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피해자 주거 안정을 위해 금융권의 경매·공매 유예를 추진한다고 한다. 금융기관이 제3자에게 채권을 매각한 경우에도 경매를 유예하게 될 모양이다. 국회에서도 피해자 구제를 위한 법 정비 움직임이 부산하다. 전세 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요구했던 추가 대책 중 일부가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명심할 것도 있다. 정부, 정치권이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 피해자들에게 적정한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일부 정당이 제안한 피해 주택 공공 매입 방식에 선을 그었다. 불가피한 선택이다. 공공 매입은 선순위 채권자들에게 매수 대금이 돌아가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범죄를 촉발하는 허점이 되기 십상이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 쓰지는 못하는 법이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돕는 생색을 내겠다고 국민 혈세를 무리하게 축내는 비상 처방을 쏟아내는 불합리한 경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 차제에 선의의 제도로 출발했지만 집값·전셋값 앙등을 촉발하는 부작용이 큰 전세자금대출제도, 관련 보증제도 등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