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오늘 5박 7일간의 공식 방미일정에 돌입했다. 2011년 10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 이후 12년 만에 성사된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이다. 바람 앞의 등불같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동북아 지정학 상황에서 70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안보와 번영의 기틀을 거듭 다져야 하는 방문길이다. 윤 대통령은 신중하고 사려 깊은 행보로 우의를 돈독히 하면서 국익을 챙겨야 한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임하는 윤 대통령은 122명의 경제사절단과 동행하고 있다. 4대 그룹 총수와 6대 경제단체장이 출동한 사절단이다. 유망 중견·중소기업인들도 대거 참여했다. 국가 정상이 앞장서는 실용 외교라는 측면도 있지만, 미중 패권 본능이 충돌하는 갈등 구조 속에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하는 현실에 대응하는 전략적 포진이란 측면도 있다. 그런 만큼 이번에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반도체지원법·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물결이다. 우리 사절단과 함께 당당히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지켜낼 것은 지켜내면서 ‘1호 사원’ 몫을 다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최근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외국 기업을 모두 배제했다. 우리 현대차 등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테슬라에 이어 2위를 다툰다는 점에서 피해가 커질 개연성이 많다. 반도체 보조금 신청요건도 초과이익 공유, 반도체 시설 접근 허용, 중국 공장 증설 제한 등 독소조항이 수두룩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마이크론 반도체 판매를 금지해 반도체가 부족해질 경우 우리 반도체 기업이 부족분을 채우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미국이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다 껄끄러운 사안들이다. 이 모든 것을 대통령이 직접 챙길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기업인·공직자들이 한결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대미 협상에 나서도록 분위기를 주도할 수는 있다. 그런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경제적 실익을 최대화하는 것에 못지않게 중차대한 책무도 존재한다. 안보 동맹 강화라는 책무다. 어쩌면 이쪽이 훨씬 더 긴박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북한은 근래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무기 시험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안기겠다는 위험한 도박이다. 북의 핵무기 위협 고도화에 대응하는 확장 억제(핵우산) 신호가 명확히 나와야 한다. 윤 대통령이 방미 직전 외교적 부담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 대만 문제 등을 공개 거론했다. 미국 손을 확실히 들어준 것이다. 이번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 대통령의 손을 들어줄 차례다. 이 문제만 잘 처리돼도 5박 7일 여행길은 빛이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