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전문가들, 금융시장·경제 파급 효과 경계
“2, 3차 영향 불가피...재정난 압박”
예금 유출 여전·상업용 부동산 대출도 아킬레스건
미국이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으로 촉발된 은행 위기 여진을 가라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 금융당국은 1일(현지시간) 새벽 파산 다음 타자로 거론되던 퍼스트리퍼블릭을 압류했고, 대형은행 JP모건체이스는 증시가 열리기 전 서둘러 인수를 발표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위기가 일단락됐다고 평가했지만, 시장에서는 충격파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다이먼 CEO는 퍼스트리퍼블릭 인수 발표 직후 “지역은행 파산이 몰고 온 은행 위기가 끝나간다”고 밝혔다. 산발적인 사건 발생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3월 SVB 파산 이후 증폭된 금융시스템 붕괴 우려에 분명히 선을 그은 것이다.
퍼스트리퍼블릭이 금융위기 불씨로 지목돼왔다는 점에서 급한 불을 껐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해당 은행에서 1분기 빠져나간 고객 예금만 1020억 달러(약 137조 원)에 달하고, 주가가 3월 초 대비 98% 폭락하면서 위기설을 키웠다. 퍼스트리퍼블릭 인수 발표 후 개장된 증시에서 일부 지역은행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지만, 앞서 SVB와 시그니처뱅크 파산 후폭풍에 견줘 양호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다이먼 CEO의 확신에도 시장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날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SVB, 시그니처뱅크에 이은 세 번째 은행 인수가 금융시장과 경제에 가져올 부정적 여파를 우려했다.
PGIM의 데이비드 헌트 대표는 “은행시스템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 강화가 나타날 것”이라며 “신용 공급이 줄면서 수요 둔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새 제재는 특히 지역은행을 상당히 압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베스트코프의 리시 카푸어 CEO도 “은행권에 2, 3차 영향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것이 없다”며 “재정난이 발생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경기둔화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견고한 탓에 2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또다시 0.25%포인트(p) 인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미국 기준금리 상단은 5.25%까지 치솟게 된다.
고금리는 지역은행의 유동성 위기를 압박, 가뜩이나 불안한 재정 건전성 우려를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개입 이후 지역은행에서 빠져나가는 예금이 줄기는 했지만, 머니마켓펀드(MMF) 등 안전하면서도 금리를 더 주는 자산을 찾아 이동하는 움직임은 여전하다. 미국 은행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연방주택대부은행(FHLB) 대출 규모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FHLB의 순대출 규모는 3월 1조4700억 달러에서 4월 1조4900억 달러로 증가했다. 연준이 지원하는 긴급대출 규모도 4월 말 기준 1552억 달러로, 최고점에서 감소했지만 예년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지역은행들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비중이 크다는 점도 잠재적 화약고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은 고금리와 경기둔화가 맞물리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경기 부진 여파로 공실은 늘어난 반면 갚아야 할 대출 비용이 급증해 관련 업체들의 줄도산 우려가 고개를 든다. 이들 채권의 80%를 보유하고 있는 지역은행도 타격이 불가피한 셈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2025년 말까지 대출 만기가 도래하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1조 달러가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