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놓고 시위 나서는 의사들...왜? [이슈크래커]

입력 2023-05-02 15:22수정 2023-08-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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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하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서울시의사회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노상우 기자 nswreal@)
청진기를 들고 환자를 돌봐야 할 의사들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시위에 나선다고 합니다. 간호법 통과에 따른 의료계 내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가운데 보건의료단체들은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을 경우 17일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한 것입니다. 정부는 이들 단체 달래기에 나섰지만 간호법을 둘러싼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입니다. 논란의 ‘간호법’ 쟁점은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간호법 통과, 의료 대란으로…

간호법은 의료법에 있던 간호사에 대한 규정을 떼어내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체계 등을 정한 단독법입니다. 간호법 제정안의 핵심은 의료법 내에 존재했던 간호 관련 내용을 별도의 법안으로 분리했다는 점입니다. 간호사와 전문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업무를 구분, 간호사 등의 근무 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도록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의협과 치의협 등은 간호법 단독 제정이 다른 직역들의 개별법 난립을 유도해 보건 의료 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며 자칫 간호사의 단독 의료행위를 허용한 것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정안에서 논란이 된 부분은 간호법 제1조의 ‘지역사회’라는 표현입니다. 1조에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의 안전을 도모해 국민의 건강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의협 등은 ‘지역사회’라는 단어가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 없이 단독으로 개원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며, 간호법은 간호사라는 한 직역의 이익만을 위한 법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간호사가 의사 업무 범위를 침범하고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돼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고 우려한 것입니다. 물론 현행법 만으로 간호사가 단독 의료행위를 할 수는 없습니다. 간호협회 역시 현재 간호법에 단독개원과 관련한 실질적인 조항이 없어 간호사의 단독개원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간호법이 규정한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현행 의료법이 규정한 간호사의 업무와 동일해 다른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고 반박한 것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간호법 제정안에서 ‘지역사회’ 문구를 삭제하는 중재안을 마련했지만 수용되지 않은 채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다만 의협 등은 이 법안이 향후 단독 의료행위를 가능하게 할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우려합니다.

또한 논란이 됐던 부분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 입니다. 현행법에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로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호법 제정안에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의사의 처방’이라는 문구 입니다. 의사협회는 의사의 처방만 있다면 어디서든 간호사의 단독 개원이 가능하게 된다며 의료 현장에서 혼란이 일어날 것에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결국 해당 문구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수정돼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왼쪽부터)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 회장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이 간호법에 반대하며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노상우 기자 nswreal@)
간호조무사협회도 참전…쟁점은 무엇?

의사 뿐 아니라 간호조무사들도 간호법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간호조무사들은 “간호조무사의 학력 제한 폐지를 하지 않은 간호법은 반대한다”는 입장입니다. 현재 간호조무사 응시 자격은 ‘고졸 이하 또는 사설학원 수료자’로 제한되고 있는데 이 같은 제한을 폐지하지 않고 간호사의 처우만을 개선하는 것은 특혜라는 주장입니다.

간호법에 의하면 간호조무사가 간호사를 보조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간호조무사의 단독 고용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인건비 부담이 커져 의료 기관 등에서는 간호조무사 고용까지 꺼리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간호법을 대표적으로 반대하는 의사 측과 간호조무사 측은 간호법이 의료 현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겁니다.

‘간호법 반대’ 의료연대, 내일 연가 투쟁…17일엔 총파업 불사

간호법 제정에 반대하는 보건의료 직역 단체들이 3일부터 연가 투쟁을 시작합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해 재의 요구권(거부권) 행사나 재논의 등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17일 총파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간호법 제정에 반대하는 13개 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의료연대)는 3일 연가 투쟁과 단축진료로 투쟁을 시작합니다. 아울러 의료연대는 이날 오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간호법 강행처리에 대한 규탄대회를 열고, 11일에도 같은 방식으로 2차 연가 및 단축진료 투쟁에 나설 예정입니다. 이같은 집단행동에도 불구하고 간호법 재논의 요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17일에는 ‘4400만 연대 총파업’ 등과 같이 투쟁 수위를 점점 높여가겠단 계획입니다.

의료연대는 이러한 투쟁은 직역 이기주의가 아닌 의료 체계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박명하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은 “간호법이 시행되면 간호사들은 병의원을 떠나 지역사회 돌봄사업에 참여하면서 의사의 지도 없이 의료행위를 하게 된다. 의료기관들은 경영난에 시달리고 2차 및 3차 의료기관들은 간호사 인력난을 겪는 등 대한민국 의료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간호사보다 규모나 영향력 등에서 힘이 없는 약소직역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돼 생존권을 빼앗고 기본권을 유리하는 것이 바로 이 간호악법(간호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회도 ‘불똥’…공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간호법으로 인한 마찰은 국회로 불똥이 튀었습니다. 본회의 통과 전까지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압박하는데 주력했지만 이제는 법안이 대통령실로 넘어간 상황입니다.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15일 이내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 요구를 해야 합니다. 의사와 간호조무사 등이 거세게 반발하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압박하자 직역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는 양상입니다. 간호사단체는 만일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할 경우 투쟁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반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간호법에 찬성하고 있는 간호협의 반발도 예상됩니다.

단체 행동을 앞두고 의료 현장에 일부 차질이 예상되자 정부는 보건의료 재난위기 ‘관심’ 단계를 발령하고 의료현장을 찾아 보건의료단체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정치권에서도 간호법에 대한 공방이 벌어졌고 간호법을 강행 처리한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향해 조속한 간호법 공포를 촉구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간호법은 윤 대통령 대선 공약이다. 국민과 했던 약속을 파기하지 않으실 것으로 믿는다”며 “즉각 법률을 공포하기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집권여당인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대로 가면 의료 대란과 보건 위기가 불가피하다”며 대통령에게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은 4일 정부로 이송될 예정입니다. 대통령은 간호법을 이송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 공포하거나 이의가 있으면 이의서를 첨부해 국회로 되돌려 보내는 거부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거부권이 현실화될 경우 간호법에 찬성하는 대한간호사협회(간협) 등의 반발이 예상돼 또 다른 갈등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간협은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언급했던 사안임을 강조하며 간호법 처리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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