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보호 강화" 목소리 커져
코인 발행 등 담은 2단계 입법 아직
부실상장 규제ㆍ증권 여부 판단 불가
한국은 지난달 25일 가상자산법이 법안 소위를 통과하며 가상자산 규제를 향한 첫걸음을 뗐다. 정치권에서는 큰 이변이 없는 한 법안의 통과를 점치고 있다. 세계 각국 규제 원년 흐름에 첫발을 맞춘 셈인데, 업계에서는 구체적인 행위 규제를 담은 업권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P코인’을 둘러싼 강남 납치·살해 사건, 거래소 뒷돈 상장 사건,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구속 등의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투자자 보호를 강화한 법 제정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테라·루나 사태 및 각종 다단계 사기 등을 막을 이용자 보호 법안은 마련했지만, 코인 발행과 공시 등 구체적인 행위 규제를 담은 2단계 입법은 아직이다. 정무위 법안제1소위는 가상자산법을 통과시키며, 2단계 입법을 위해 금융당국에 법률적 의무를 부여하는 다양한 부대 의견도 채택했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에서는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 규제가 마련되는 속도에 맞춰 2단계 입법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2단계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에 의결된 가상자산법은 어디까지나 이용자 보호, 시세조종을 비롯한 불공정거래행위 규제에 중점을 둔 법안이다.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 발행·공시·상장 기준은 제외된 것이다. 가상자산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부실한 가상자산의 상장을 규제하거나, 가상자산의 증권 여부를 판단할 방법은 아직 없는 셈이다.
구체적인 업권법이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현재 국내 가상자산 규제는 자금 세탁 방지 규정을 담은 특정금융정보법을 통해서만 이뤄지고 있다.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와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ISMS 인증 절차와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등으로 사업자를 규율하는데, 구체적인 행위 규제는 금융위의 관할 아래 권고 사항으로 다뤄져 법적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요즘 코인마켓 거래소에서는 FIU에서 어느 거래소에 검사를 나가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라면서 “FIU가 자금 세탁 방지 부분을 중심으로 본다지만, 인력을 포함해 사실상 운영 전반에 대한 부분을 모두 살펴본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 그림자 규제로 꼽는 지점은 한 두개가 아니다. 당장 거래업자·기타업자 단 2개로 나뉘는 사업자 신고 수리부터 법적 공백이 발생한다. 수탁·운용·평가·예치 등 나날이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는데, 단 2개 뿐인 사업자 신고 범위는 이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예치 서비스의 경우 자본시장의 펀드· 파생 상품처럼 위험성이 크지만, 투자자들에게 위험 고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면 유럽연합의 가상자산 법안인 MiCA(Markets in Crypto Assets)는 코인의 세부 정의를 나누고, 백서 발행 등에 관한 구체적인 행위 규제도 명시했다. 미카는 가상자산의 목적에 따라 준거토큰, 전자화폐토큰, 유틸리티토큰 등으로 유형을 세분화했다. 코인 발행 최소 20일 전 백서를 규제 당국에 공유하도록했고, 백서에 필수적으로 담아야 하는 기준(특성, 투자자 권리, 기술)도 법안에 담았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가 충분한 준비금을 보유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김동환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는 “현재 우리는 자금세탁방지(AML)에 관련해서만 검토하고 있다. 각 토큰에 대한 어떤 식의 규제를 할 지에 대한 기준이 없고, 입법화가 없어 토큰별로 성격에 따라 차등 규제 등 유연함이 부재하다. 가상자산에 대한 범위, 사업범위 성격 등 구체화된 가이드라인도 없다”면서 “향후 법안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좀 더 명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