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북핵 등 외부위협 고조
불평등 심화로 내부 분열도 커져
국가적 혁신의지 키우지 못해
갈등치유·국민통합 리더십 절실
혁신이 정치적인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혁신은 창조적 파괴의 과정인 바, 이 과정에서 기존 기업과 산업의 쇠퇴, 관련 종사자의 실업 등 다수의 패자가 발생한다. 그런데 혁신의 패자들은 종종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정치적 로비 등을 통해 혁신에 저항한다. 혁신을 창출한 기업 등은 소수이고 그 경제적 잠재력을 꽃피우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 반면 혁신으로 경쟁력을 잃고 퇴출되는 기업과 종업원은 많고 그 피해는 즉각적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혁신 기업에 비해 기존 기업과 종업원은 더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며 정치인과 정부는 이들의 압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택시업계의 반대로 우버택시가 도입되지 못한 바 있고, 의사협회의 반대로 원격의료나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가로막혀 있다. 산업혁명 시기 영국에서 일어났던 러다이트운동, 붉은 깃발 법 제정도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요컨대, 혁신은 기술과 경제의 문제를 넘어 사회와 국가가 개입되는 매우 정치적 문제인 것이다.
‘창조적 불안정론’에 따르면 국가적 혁신 수준은 사실상 정치에 의해 결정된다. 이 이론은 한 국가의 혁신 의지를 ‘국가에 대한 외적 위협 - 내적 분열 = 창조적 불안정’ 등식으로 설명한다. 즉, 국가의 안보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클수록 그리고 국가 내적인 갈등과 분열이 적을수록 국가의 창조적 불안정이 높아지고 국민과 정부의 혁신 의지가 강해지면서 혁신이 늘어난다고 본다. 그러므로 높은 외부 위협에 직면한 국가가 국가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사회계층 간 갈등을 해소해 국민의 혁신관련 비용 및 위험 부담 의지를 강화할 경우 혁신이 증진된다. 이 이론은 과거 우리나라의 혁신 동기를 잘 설명한다.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 늘 북한과 대치하는 동시에 중국, 러시아, 일본과 이웃해 있어 안보에 대한 외적 위협이 높았다. 이에 대응해 박정희 정부 이래 정부와 기업인은 물론 사회 여러 계층이 일치단결해 새로운 과학기술과 사업방식을 열심히 배우고 불철주야 일했다. 높은 국외적 불안을 굳건한 국내적 단합과 드높은 혁신 노력으로 승화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것이다.
2010년대 이후 세계 정치경제질서가 급변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외부적 위협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미·중 간 글로벌 헤게모니 다툼, 북한의 핵개발 등으로 국가안보가 불안해졌다. 탈세계화, 넷제로 흐름이 본격화되고 디지털 전환에 따른 세계경제구조 변화가 확산되면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도전들은 하나하나가 우리나라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하물며 한꺼번에 제기되고 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단합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재산과 소득의 불평등이 높아 사회계층 간 분열이 심하고, 소수 대기업과 다수 중소기업 간 경쟁력 격차도 매우 크다. 정치적 이념과 세계질서 변화 대처 방향을 둘러싼 정파 간 대립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위기를 돌파할 정책과 역량을 갖춘 정당이 보이지 않는다. 현명한 국가적 비전을 바탕으로 국가 발전에 헌신하고자 하는 지도자도 발견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외적 위협이 매우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무능으로 내적 분열이 치유되지 못하면서 국가적 혁신 의지가 강화되지 못하고 있다. 하루빨리 헌신적이고 탁월한 비전을 갖춘 리더십이 등장해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을 통합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격변기에는 정치가 혁신과 경제발전 수준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