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내기·치적쌓기용 행정논란
금융권“특례보다 규제완화해야”
금융위원회가 4년째 추진해 온 핵심 사업 ‘금융 규제 샌드박스(혁신금융서비스)’의 선정 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명칭과 내용 등이 유사한 서비스가 잇따라 선정되면서 ‘혁신’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오면서다. 일각에서는 혁신 금융의 치적을 쌓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11일 금융당국 및 금융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이날 현재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사례는 총 238건이다. 이 중 안면인식 기술을 적용한 것은 14개로 파악됐다. 이들 서비스는 결제, 실명확인, 계좌 개설 등 활용 방식에만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같은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했다.
혁신금융서비스는 기존 금융서비스의 제공 내용·방식·형태 등 차별성이 인정되는 금융업이나 이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해 규제 적용 특례를 인정하는 제도다. 혁신금융서비스에 지정되면 기본 2년, 연장 2년을 통해 최대 4년간 규제 예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금융위는 최근 하나은행 안면인식 기술 활용 비대면 실명확인 서비스를 2년 연장했다. 하나은행은 2025년 4월 13일까지 규제 예외 혜택을 받는다. 이는 지난해 12월 2년 연장된 △코인플러그 ‘안면인식 기술 기반 DID를 통한 비대면 실명확인 서비스’(2020년 12월 지정) △카카오뱅크, 토스증권, 토스뱅크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실명확인 서비스’(2020년 12월 지정)와 유사하다.
2021년 7월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BNK부산은행의 ‘안면인식 비대면 실명확인 서비스’는 전년 지정된 DGB대구은행 서비스와 동일했다. DGB대구은행은 안면인식 기술 활용한 서비스로 비대면과 대면 방식을 신청해 각각 지정받았다. 두 서비스는 비대면이 아닌 대면 방식으로 변경된 것 외에 이렇다 할 혁신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안면인식 비대면 계좌 개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해당 서비스가 처음 지정된 건 2020년 2월로, 당시 KB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이 금융실명거래법상 특례가 인정됐다. 이후 하나은행은 똑같은 서비스 명칭과 특례 내용으로 지정받았다.
이에 혁신금융서비스가 ‘우려먹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금융사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한시적으로 유예해 혁신적 금융서비스를 실현한다는 본래 취지와도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당국은 혁신금융심사위원회 위원장에 민간 출신 전문가를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금융위 국정감사에 참석해 “민간위원장을 도입해 민간의 역할을 강화할 생각”이라면서 “혁신 관련 전문가 자문단도 구성해 혁신성에 대한 평가도 민간 중심으로 운영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융위의 노력에도 서비스의 중복 문제는 여전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민간위원장을 도입해 혁신서비스를 지정하고 있다”면서 “지정된 혁신서비스 중 이름이나 사용되는 기술은 같아도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것들도 있는데 기업들의 혁신을 독려하기 위해 가급적이면 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서는 전체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제 샌드박스 등 혁신금융 방안이 건수 늘리기식 성과주의로 가는 것은 좋지 않다”면서 “혁신의 주체는 기업이고 이를 촉진하려면 기업이 자유롭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