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종로 금호미술관에서 만난 임노식 작가는 고향 경기 여주 남한강변 일대 풍경을 작업 소재로 삼았다고 했다. 2009~2010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일환으로 남한강 부근 흙을 퍼 올려 높게 쌓아뒀던 것이 본래 용도로 사용되지 못하면서 지역에 ‘모래산’을 이루게 됐다고 했다.
임 작가의 작품은 판화에 가는 선을 파내고 그 위에 물감을 입혀 프레스로 찍는 등의 방식으로 완성한 평면 회화 68점과 프레임 입체작업 6점이다.
인공산의 수많은 모래알을 상징하는 듯 가늘고 빼곡하게 채워진 선으로 지난 10여년 간관찰한 나무, 돌, 꽃 등을 표현했다. 본래 존재하던 식물이 멸종되고 전에 본 적 없던 종류의 생명체가 생겨나는 등의 변화를 다뤘다.
전시관 상단에는 연한 녹빛을 띠는 작업물이 둘러졌다. 강정하 금호미술관 선임 큐레이터는 “주변환경 변화로 물에 녹조가 생기고 푸른 이끼가 끼는 걸 보고 작가가 이번 전시작품 전부 제목을 ‘Green Line’(녹색 띠)으로 통일했다”고 설명했다.
신진 작가 발굴과 지원을 위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현승의, 이희준 작가의 작품도 동시에 소개한다.
제주 출신 현승의 작가는 관광지 제주를 찾는 외지 사람들의 즐거움 이면에 비행기 소음과 자연 파괴 등의 문제로 고통받는 현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회화작품을 선보인다.
현 작가는 이날 "비대화된 낭만을 말하고 싶었다”고 작업 취지를 전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내가 무언가를 소비하면 저쪽에 영향을 끼치는데, 자본주의는 그 연결고리를 던져버리고 마치 ‘이쪽’과 ‘저쪽’의 경계가 있어서 ‘저쪽은 나랑 아무 관련이 없다’, ‘나는 이 안에서 내 행복을 누리면 된다’는 인식을 끊임없이 주입시킨다”는 것이다.
‘평범한 ㅁ씨의 휴가’ 연작은 그의 문제의식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호화로운 호텔, 화려한 식당과 옷가게 등을 프레임 안에 그려두고, 프레임 바깥으로는 훼손된 제주 자연과 시위하는 도민들의 모습을 담았다.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들려오는 시끄러운 비행기 소리가 시각적 자극을 유발하는데, 이것이 소음처럼 느껴진다면 작가 의도가 적중한 것이다.
현 작가는 “관광지에서 (비행기 소리는) 일종의 공해라고 할 수 있는데 전시를 보는 동안 계속 이 소리를 들으면서 (현지 사람들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도록 영상작업을 함께 전시했다”고 말했다.
회화 그 자체의 균형과 비례에 집중하도록 이끄는 추상 작품도 선보인다. 이희준 작가는 건설 현장에서 사용되는 임시 구조물 ‘비계’를 소재로 작업물 ‘If You Cut the Clouds With a Knife' 등을 공개한다.
건축물 외벽, 임시 가림막, 바닥 보양재, 단열용 압축 스티로폼 등 건설현장에서 사용되는 부자재를 활용해 전시를 마련한 이 작가는 “완성된 장소가 아닌 완성되기 이전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공간으로서 (관람객이) 이 현장이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지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금호영아티스트 전시 2부로 소개되는 임노식, 현승의, 이희준 작가의 개인전은 다음 달 11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매주 토요일인 20일, 27일, 3일에 작가별 토크가 진행된다.